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작품배경, 악곡분석, 연주법)
솔직히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악보를 펼쳐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45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모방하고 대화하는 구조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실내악의 정수라고 불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품 배경
그리그는 왜 세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를 굳이 단조로 썼을까요. 제가 이 궁금증을 오래 품었는데, 작품 배경을 파고들면 꽤 명확한 그림이 나옵니다.
그리그의 첫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는 1865년, 그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쓴 F장조 작품입니다. 이 곡은 리스트의 관심을 받아 그리그의 이름을 유럽 음악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년 뒤 쓴 2번 G장조 소나타는 뛰어난 바이올린 테크닉을 요하는 작품으로,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요한 스벤센(Johan Svendsen, 1840~1911)에게 헌정했습니다. 그리고 무려 20년이 지난 1887년, 마침내 3번이 완성됩니다.
3번의 출발점은 1886년 여름 바이올리니스트 테레지나 투아(Teresina Tua)의 연주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 자극으로 작곡을 시작해 이듬해 1월에 완성했고, 1887년 12월 10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f Brodsky)와 그리그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에 성공했습니다. 제가 이 초연 배치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그 스스로 피아노를 맡았다는 사실이 이 곡에서 피아노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앞선 두 소나타가 모두 장조인 반면 3번만 단조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그는 피아노 협주곡, 발라드 g단조, 현악 4중주 g단조 등 웅장하고 극적인 작품에 의도적으로 단조를 선택했습니다. 3번 소나타 역시 그 흐름의 연장선입니다. 또한 2악장은 스벤센의 로망스(Romance op. 26)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주 가이드
악곡 분석으로 들어가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소나타 형식이라면서 왜 이렇게 전조가 많을까요?
1악장은 Allegro molto ed appassionato, c단조 6/8박자의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입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란 고전 소나타의 제시부-발전부-재현부 틀을 유지하되, 주제 수와 전조 방식을 작곡가가 훨씬 자유롭게 운용하는 낭만주의적 변형을 말합니다. 이 악장에서 제1주제는 c단조로 제시되고, 제2주제는 Eb장조, Gb장조, E장조로 두 번씩 전조되며 전개됩니다. 고전 소나타 교과서에는 없는 방식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3주제의 존재입니다. 일반 소나타 형식은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되는데, 그리그는 여기에 세 번째 주제를 추가했습니다. 제3주제부에서는 반음계(chromatic scale), 즉 반음씩 진행하는 음계를 선법적으로 활용하여 노르웨이의 토속적 색채를 만들어냅니다. 반음계란 한 옥타브를 12개의 반음 단계로 모두 나누어 이동하는 음계를 뜻하며, 이것이 화성에 녹아들면 고전적 조성 감각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울림을 냅니다.
제가 직접 악보를 짚어가며 확인한 부분 중 인상 깊었던 것이 피아노의 강가르(gangar) 리듬입니다. 강가르 리듬이란 노르웨이의 전통 민속 춤곡 리듬 중 하나로, 6/8박자 안에서 4박자 강세를 교차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1악장 47마디부터 피아노 왼손에 이 리듬이 나타나면서 제2주제부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 리듬은 약박에 위치하기 때문에 박자를 흐트러뜨리기 쉽고, 연주할 때 바이올린 선율을 귀로 따라가면서 피아노가 리듬 축을 잡아야 합니다.
2악장 Allegretto espressivo alla Romanza는 E장조 2/4박자, 3부분 형식(A-B-A'-코다)입니다. A부분이 피아노 독주로 주제를 먼저 제시하고, 바이올린이 그것을 이어받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B부분에서는 같은 으뜸음 단조인 e단조로 전환되어 할링(halling) 리듬이 등장합니다. 할링이란 노르웨이의 전통 독무 형식에서 유래한 빠르고 도약적인 리듬 패턴으로, A부분의 서정성과 뚜렷한 대비를 형성합니다. 제 경험상 이 A-B 사이의 템포 전환이 상당히 극적이어서, 처음 들을 때 같은 악장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3악장 구조와 피아노 연주에서 놓치기 쉬운 것
3악장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 과연 어색하지 않을까요?
Allegro animato, c단조 2/2박자인 3악장은 제시부-재현부-코다로 구성된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을 취합니다. 발전부가 생략된 대신 재현부에서 f단조, Ab장조, a단조, f#단조로 이어지는 전조가 풍부하게 배치되어 있어, 발전부가 없어도 긴장감이 전혀 꺼지지 않습니다.
제1주제부에서는 바이올린이 먼저 선율을 제시하고 피아노가 받아 모방하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32마디 이후 Eb 도리안(Dorian) 음계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도리안 음계란 자연 단음계에서 6음이 반음 올라간 형태로, 중세 교회 음악에서 유래한 선법입니다. 그리그가 이 선법을 활용하면 곡 전체의 조성이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고대 북유럽 음악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효과를 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흥미롭다고 느낀 점은, 피아노 왼손 베이스가 G음에서 Gb음으로 반음 내려가면서도 근음 C는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속음(pedal point), 즉 베이스에서 특정 음이 움직이지 않고 유지되는 동안 위성부의 화성이 변화하는 기법은 노르웨이의 전통 저음 현악기인 하르단게르 피들(Hardanger fiddle)의 개방 공명줄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이 곡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특히 신경 써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지속음(pedal point) 구간에서 왼손 베이스 음이 또렷하게 들리도록 페달을 짧게 사용할 것
- 강가르, 할링 등 민속 리듬은 약박에 위치할 때 박자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바이올린 선율과 호흡을 맞출 것
- 피아노가 선율을 주도하는 구간과 배경 역할을 하는 구간의 음량 차이를 명확히 설정할 것
- 헤미올라(hemiola), 즉 2박자와 3박자가 교차하는 리듬 패턴이 나타나는 구간에서 화음이 끊기지 않도록 부드러운 터치를 유지할 것
낭만주의 소나타 형식으로 본 이 곡의 위치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어느 장르 계보에 넣어야 할까요. 실내악인지, 협주곡인지, 아니면 민속음악인지.
이 곡은 고전 소나타의 뼈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낭만주의 특유의 자유로운 전조와 풍부한 반음계 화성진행을 취합니다. 감7화음(diminished 7th chord)이 자주 등장하는데, 감7화음이란 단3도 간격으로 쌓인 네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해결될 수 있는 강한 긴장감을 내포합니다. 그리그는 이 화음을 전조의 징검다리로 적극 활용하여 조성 간 이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낭만주의 음악학 분야에서는 그리그를 국민악파(National Music School)의 대표 작곡가로 분류합니다(출처: 그로브 음악 사전). 국민악파란 19세기 후반 유럽 각국이 자국의 민속 음악 요소를 고전·낭만 음악 어법에 통합하려 한 흐름을 말합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민속 리듬과 선법이 낭만주의 소나타 형식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협주곡적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이 작곡된 1887년 무렵 그리그의 작곡 방향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노르웨이 민족적 색채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3번 소나타에서는 좀 더 보편적인 유럽 음악 언어로 포장하면서 민족적 요소를 내부에 녹여 넣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노르웨이음악정보센터(Music Information Centre Norway)의 자료에 따르면 그리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국제적 청중을 의식한 작곡 전략을 구사했다고 평가됩니다.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한 번 들어서 구조가 다 보이는 곡이 아닙니다. 악보를 펼쳐놓고 두 악기의 모방 관계를 추적하다 보면, 피아노가 바이올린의 소리를 상상하며 연주해야 한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납니다. 저는 이 곡을 분석하면서 실내악에서 피아노 연주자의 역할이 단순한 반주가 아닌 공동 서술자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을 처음 접한다면 1악장 코다에서 두 악기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지점에서 그리그가 이 소나타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가 가장 선명하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