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러시아 음악사에서 미하일 글린카(Mikhail Ivanovich Glinka, 1804-1857)는 단순한 작곡가를 넘어 러시아 국민음악의 창시자로 평가됩니다. 그는 서유럽의 음악 어법을 철저히 습득하면서도 러시아 민요와 정교회 성가의 전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본 글에서는 글린카 이전 러시아 음악의 역사적 배경과 그가 확립한 예술가곡의 특징, 그리고 그의 음악적 유산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봅니다.
민요 전통
러시아 음악의 역사는 9세기부터 문헌으로 추적 가능하며, 그 기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988년 블라디미르 1세(Vladimir I, 955, 960-1015)가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수용하면서 유입된 비잔틴 문화(Byzantium culture)의 영향입니다. 동방정교 사제들이 러시아로 이동하며 비잔틴 교회 음악이 러시아화되어 '즈나메니(Znameny)' 성가로 정착했습니다. 이 성가는 대개 단선율 형태로 저음부에서 약간의 화음을 사용했으며, 가사의 낭독에 중요성을 두어 말의 억양에 충실한 선율 형태를 보였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성가의 음악적 특징은 모노포니(monophony)적 선율과 단음절(Syllabic)적 선율로 언어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8 선법(eight-mode)이 사용되어 비잔틴 음악을 계승했습니다. 도리아 선법(Dorian mode), 프리지아 선법(Phrygian mode), 리디아 선법(Lydian mode), 믹솔리디아 선법(Mixolydian mode)의 정격 선법과 변격선법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선법 체계는 후에 19세기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들이 민족적 색채를 찾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둘째 축은 러시아 민요 전통입니다. '스코모로키(skomorokhi)'로 알려진 예술가들은 서사적 발라드인 '빌리니(Byliny)'를 구전으로 전승했습니다. 러시아 민요는 주제에 따라 역사적, 제사적, 일상적, 서정적 노래로 구분되며, 대부분 유연한 선율보다는 낭독 형태를 보이고 좁은 음역과 반복적 형식, 후렴구를 특징으로 합니다. 선율은 기본적으로 선법에 기초하며 장·단조의 변형된 형태, 5음 음계, 3음 음계가 사용되었습니다. 리듬은 러시아 언어의 리듬을 따라 매우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불규칙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표트르 대제(Pyotr Alekseyevich I, 1672-1725)의 서구화 정책으로 유럽 화음이 수용되며 러시아 음악 문화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정교회 성가는 17세기 후반까지 단선율 혹은 2~3성부 정도의 다성음악에 머물렀으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화성 개념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글린카가 러시아적 음악 어법을 확립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는 이 유산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여 국민음악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음악 전통 | 주요 특징 | 음악적 요소 |
|---|---|---|
| 즈나메니 성가 | 비잔틴 교회 음악의 러시아화 | 단선율, 단음절, 8선법 체계 |
| 러시아 민요 | 스코모로키에 의한 구전 전승 | 5음 음계, 반복 형식, 낭독적 선율 |
| 18세기 변화 | 서구화 정책에 의한 화성 도입 | 다성음악, 유럽 화음 수용 |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향
18세기 러시아 궁정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이 지배적으로 침투했습니다. 안나 여제(Anna Ivanovna, 재위 1730-1740)는 이탈리아 작곡가 아라야(Francesco Araja, 1709-1770)를 궁정 음악가로 초청했으며, 그는 러시아 대본의 번역 오페라 <케팔루스와 프로크리스(Tsefal I Prokris)>를 작곡했습니다. 이후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1785),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 치마로자(Domenico Cimarosa, 1749-1801) 등 이탈리아 부파의 대가들이 러시아에 유입되었습니다. 알렉산더 1세(Alexander I, 재위 1801-1825) 시기에는 프랑스 음악이 선호되어 브와을디외(François-Adrien Boieldieu, 1775-1834)가 지휘자로 초청되었습니다. 그는 1803년부터 1810년까지 러시아에 머물며 <텔레마크(Télémaque)>, <아타리(L'Athalie)> 등 9편의 프랑스풍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카테리노 카보스(Catterino Cavos, 1776-1840)는 러시아 전설과 동화에 관심을 가지며 민요선율을 연구했고, <영웅 일리야(Ilya Bogatyr)>, <이반 수자닌(Ivan Susanin)> 등을 창작했습니다. 음악적 특징은 이탈리아풍이었으나 내용은 러시아적이었습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로망스'가 러시아에 도입되며 러시아 예술가곡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러시아 작곡가들은 프랑스어 가사에 곡을 붙이다가 점차 러시아어 가사를 포함했습니다. 그리고리 테플로프(Grigory Teplov, 1717-1779)의 17곡 가곡 모음집 <노동 중의 자유시간(Idle Hours Away from Work)>이 1751년 출판되었고, 표도르 두비얀스키(Fedor Dubiansky, 1760-1796)와 조제프 코즐로프스키(Jozef Kozlowsky, 1759-1831)가 단조, 관계조 사용과 민요 음조 모방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발전시켰습니다. 티토프(Nikolai Titov, 1800-1875)는 러시아 가곡을 근대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브와을디외와 라퐁(Charles Philippe Lafont, 1781-1839)의 성악곡을 모델로 삼아 단순하면서도 우수적 분위기의 로망스를 창작했습니다. 베르스토프스키(Alexey Nikolayevich Verstovsky, 1799-1862)는 로망스와 러시아 민속 노래, 집시풍 노래를 작곡했으며 러시아 발라드의 창시자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이 창작한 가곡의 특징—단조의 분위기, 민요 음조 모방, 관계 장조로의 귀결, 감성적 주제는 글린카가 후에 차용한 양식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예술가곡
미하일 글린카는 1804년 스모렌스크(Smolensk) 지역의 노바스파스코예(Novospasskoye)에서 대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에 유모와 농부들이 불러주던 민요와 민속 문화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교회 교회음악으로 유명한 지역적 바탕은 후에 그가 종교적 소재의 합창 성악곡을 창작하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18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의 제자 챨스 메이어(Charles Mayer, 1799-1862)에게 피아노를 사사했습니다. 1820년대에 그는 피아노곡, 가곡, 실내악곡을 창작하며 주목받았고, 첫 성악 로망스 '나의 하프(Moya arfa)'를 작곡했습니다. 1825년 작곡한 '나를 불필요하게 유혹하지 마오(Ne iskushay menya bez nuzhdi)'는 성공적인 로망스로 글린카 자신이 작곡가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였다고 선언했습니다. 1830년부터 1833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와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의 오페라와 접촉했고, 밀라노 출판사 리코르디(Ricordi)의 의뢰로 이탈리아 스타일의 디베르티멘토와 세레나데를 작곡했습니다. 이탈리아 체류 중 유명 가수 안드레아 노차리(Andrea Nozzari)에게 성악을 배우며 성악 기법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약 15곡의 이탈리아 스타일 가곡을 작곡했습니다. 이후 베를린에서 음악학자 덴(Siegfried Dehn, 1799-1858)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우며 비기능화성과 선법적 폴리포니의 러시아적 소재 적용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글린카는 비망록에서 "덴은 나의 음악적 지식을 잘 정리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 일반에 대하여 이념을 주었다"고 서술했습니다. 1834년 귀국 후 글린카는 국민 오페라 <이반 수사닌(Ivan Susanin)>을 구상했고, 주코프스키(Vasily Zhukovsky, 1787-1852)의 권유로 이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1836년 완성된 이 작품은 황실 대극장에서 상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니콜라이 1세에 의해 <황제에게 바친 목숨(A life for the Tsar)>으로 제목이 수정되었습니다. 평론가 메르그노프(1804-1867)는 글린카가 "러시아의 노래를 깊이 공부하여 사람들의 음악에 기초한 러시아적 선율과 화성의 모든 체계를 펼쳐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1843년 이후 글린카는 파리와 스페인을 여행하며 관현악의 효과적 음색과 민속 음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글린카를 "동시대 걸출한 작곡가들 중 한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스페인에서 받은 영감으로 <호타 아라고네사의 화려한 카프리치오(Capriccio brillante on the Jota aragonesa)>를 창작했고, 귀국 후 이 수법을 러시아 민요에 적용하여 예술가곡 '연인이여(Milochka)'와 오케스트라 곡 <카마린스카야(Kamarinskaya)>를 창작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교향악파는 모두 카마린스카야 안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글린카는 1824년부터 1856년 사이 약 80여 곡의 가곡을 창작했으며, 이탈리아어 15곡, 러시아어 약 61곡, 프랑스어 2곡, 우크라이나어 2곡, 폴란드어 1곡 등 다양한 언어로 작곡했습니다. 주요 시인은 푸쉬킨(Alexander Pushkin, 1799-1837) 11편, 꾸꼴니끄(Nestor Kukolnik, 1809-1868) 14편, 델비그(Anton Delvig, 1798-1831) 5편, 메타스타지오(Pietro Metastasio, 1698-1782) 10편, 주코프스키 6편의 시를 사용했습니다. 주제는 사랑의 기억과 고뇌, 조국의 애환, 전투, 무덤, 권주가, 여행, 새, 자장가, 종교 등 광범위했습니다.
| 시기 | 주요 경험 | 음악적 성과 |
|---|---|---|
| 1804-1830 | 유년기 민요 접촉, 페테르부르크 교육 | 첫 로망스 '나의 하프' 창작 |
| 1830-1833 | 이탈리아 유학, 벨칸토 습득 | 15곡의 이탈리아어 가곡 창작 |
| 1834-1842 | 베를린에서 덴에게 화성법 수학 | 오페라 <이반 수사닌> 완성 |
| 1843-1857 | 파리, 스페인 여행 | <카마린스카야> 등 성숙기 작품 |
글린카의 음악은 서유럽의 형식미와 러시아의 민속적 정서가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벨칸토의 유연함을, 독일에서 형식의 견고함을, 프랑스에서 색채의 섬세함을 배웠지만, 이 모든 것을 러시아 민요의 선율과 정교회 성가의 엄숙함으로 녹여냈습니다. 특히 그의 예술가곡은 단순한 살롱 음악을 넘어 러시아 언어의 억양과 시적 내용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글린카 이후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와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지는 러시아 음악의 황금기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토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음악적 유산은 단순히 작품의 수나 양식의 완성도를 넘어, 러시아 음악이 세계 음악사에서 독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글린카의 음악이 러시아 국민음악의 시초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글린카는 서유럽의 음악 어법을 철저히 습득하면서도 러시아 민요와 정교회 성가의 전통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특히 오페라 <이반 수사닌>에서 농부 출신 영웅을 중심 캐릭터로 설정하고 러시아 민요를 비극적이고 진지한 형태로 격상시켜, 유럽 차용 문화가 아닌 자국민 속 영웅의 창조적 정신을 담은 예술을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Q. 글린카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배운 음악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A. 이탈리아에서는 도니제티와 벨리니의 오페라를 통해 벨칸토적 서정성과 성악 기법을 습득했고, 독일 베를린에서는 음악학자 덴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워 비기능화성과 선법적 폴리포니의 러시아적 소재 적용에 대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유럽적 기법이 러시아적 내용과 결합되며 독창적 양식을 확립했습니다.
Q. 글린카의 예술가곡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A. 글린카는 약 80여 곡의 가곡을 창작했으며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작곡했습니다. 푸쉬킨, 꾸꼴니끄, 델비그 등 당대 최고 시인들의 시를 사용했고, 사랑의 기억, 조국의 애환, 자연의 풍경, 민족적 영웅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유절형식과 세부분 형식을 기본으로 하되 다 악장 구조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