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벨의 「라 발스」를 처음 들었을 때 제가 느낀 건 '이게 왈츠가 맞나?'하는 의아함이었습니다. 우아한 3박자 리듬으로 시작하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뒤틀리고 과격해지더니, 마지막엔 거의 폭발하듯 끝나버리거든요. 제가 실제로 연주를 준비하며 악보를 펼쳐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라벨은 전통적인 왈츠 형식 안에서 리듬을 끊임없이 변형하고 있었습니다.
왈츠 리듬
「라 발스」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 왈츠 리듬을 바탕으로 하되, 이를 계속해서 변형시킨다는 점입니다. 제1부(마디 1-146)에서는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왈츠 리듬이 등장합니다. 마디 12-13에서 처음 명확한 왈츠 형태가 나타나는데, 저는 이 부분을 연습하면서 '아,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리듬 분할(rhythmic subdivision)이 이 곡의 핵심 기법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리듬 분할이란 기본 음표를 더 짧은 음표들로 쪼개어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디 50-65에서는 기본 왈츠 리듬이 16분음표로 분할되면서 선율이 훨씬 활발해집니다. 제가 이 부분을 연주할 때는 손목의 유연성이 정말 중요했는데, 빠른 음표들 사이에서도 첫 박의 강세를 정확히 살려야 왈츠의 느낌이 살아납니다.
마디 66-97에서는 8연음부(octuplet) 리듬이 등장합니다. 8연음부란 한 박을 8개의 음표로 균등하게 나누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원래의 3박자 느낌이 상당히 희미해집니다. 실제로 연주하면서 느낀 건데, 왼손의 8연음부 반주가 너무 커지면 오른손 멜로디가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왼손을 최대한 가볍게 처리하면서도 수평적인 흐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헤미올라
헤미올라(hemiola)는 3박자 계열과 2박자 계열을 교차시키는 리듬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3/4박자로 진행되던 곡에서 순간적으로 2박자 느낌을 주는 것이죠. 라벨은 이 기법을 정말 자주 사용합니다.
마디 44-47에서 처음 명확한 헤미올라가 나타나는데, 2박자로 진행되다가 마디 48에서 다시 3박자로 돌아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연습하면서 박자감이 계속 흔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내적으로 3박자를 계속 세면서도, 표면적으로는 2박자의 강세를 표현해야 하거든요. 이 이중성이 바로 헤미올라의 묘미입니다.
제2부(마디 146-440)에서는 헤미올라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마디 211-242에서는 강세와 스타카토의 배치로 인해 마디감이 완전히 흐려집니다. 이 부분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데, 강렬한 포르티시시모(fff)로 연주하면서도 박자가 빨라지지 않도록 통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몇 번을 연습해도 매번 긴장됩니다.
마디 517-520에서는 색깔이 다른 두 화음이 교차하면서 헤미올라 효과를 만듭니다. 이때 2도 음정의 불협화음이 너무 강조되지 않게 조절하는 게 관건인데, 제 경험상 페달을 짧게 끊어주는 게 효과적이었습니다.
동형진행
동형진행(sequence)은 특정 음형을 다른 음높이에서 반복하는 작곡 기법입니다. 라벨은 이를 통해 긴장감을 단계적으로 고조시킵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번 음역이 확장되거나 화음이 풍부해지면서 음악이 점점 거대해지는 느낌을 줍니다.
제2부에서 동형진행이 9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각각이 서로 다른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디 146-178에서는 8분음표 분산화음 위에 왈츠 선율이 올라가는 형태가 나타나고, 마디 179-210에서는 같은 리듬이 두 성부로 나뉘어 재현됩니다. 저는 이 두 부분을 연주할 때 다이나믹 대비를 확실하게 주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조금 더 내밀하게, 두 번째는 좀 더 당당하게 표현하면 동형진행의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디 371-403에서는 10연음부(decuplet) 분산화음이 등장합니다. 10연음부란 한 박을 10개의 음표로 나누는 것인데, 이게 넓은 음역에 걸쳐 펼쳐지면서 하프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음향을 만듭니다. 이 부분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멜로디 라인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분산화음이 아무리 빨라도 그건 배경일 뿐, 진짜 주인공은 옥타브로 강조된 선율이니까요.
제3부(마디 441-755)에서는 앞서 나온 리듬들이 더욱 압축되고 변형되면서 정점을 향해 치닫습니다. 마디 480-491에서는 반음계 상행과 함께 동형진행이 3옥타브로 확장되는데, 10마디 동안 피아니시모(pp)에서 포르티시시모(fff)까지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런 긴 크레셴도를 처리할 때는 단계를 미리 설계해두는 게 좋습니다. 저는 보통 3-4단계로 나눠서 음량을 조절하는데, 너무 일찍 커지면 마지막이 약해지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쌓아 올려야 합니다.
마디 579-624는 66마디에 걸친 긴 상승 구간인데, 이건 정말 체력 싸움입니다. 반음계가 계속 이어지면서 점점 빨라지고 커지는데, 호흡할 지점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중간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디 단위로 작은 호흡을 주면서 전체적인 가속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제가 「라 발스」를 직접 연주하면서 느낀 건, 이 곡이 단순히 기교를 과시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라벨은 19세기 빈 왈츠의 화려함을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을 리듬의 변형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우아한 왈츠가 점점 광기 어린 춤으로 변해가는 이 곡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된 유럽 사회에 대한 라벨의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주자로서 이런 서사를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할 때, 기술적 어려움도 조금은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참고: 논문 - 라벨(M. Ravel)의 라 발스(La Valse) 분석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