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라이네케의 플루트 소나타 '운디네'를 처음 접했을 때, 이 곡이 단순한 기교 연습곡이 아니라 한 편의 동화를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물의 요정 운디네가 인간 기사와 사랑에 빠졌다가 배신당하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 이야기를, 라이네케는 4개 악장에 걸쳐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푸케의 소설을 읽고 나서 다시 이 곡을 들으니, 각 악장마다 운디네의 감정 변화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악장구성
라이네케의 운디네 소나타는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가 흥미롭게 본 건 악장 배치가 고전 소나타의 틀을 살짝 비틀어놓았다는 점입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론도 형식, 3악장은 3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고전 소나타라면 2악장에 느린 악장이 오는 게 정석인데, 라이네케는 2악장에 빠른 론도를 배치하고 3악장에서야 느린 서정적 분위기를 펼쳐냅니다.
실제로 연주해보니 이 구조가 운디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알았습니다. 1악장에서 천진난만한 요정의 모습을 그린 뒤, 2악장에서 사랑에 빠진 운디네의 들뜬 감정을 빠르고 발랄하게 표현하고, 3악장에 가서야 훌트브란트와의 깊은 사랑을 차분히 노래합니다. 4악장은 배신과 슬픔,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맹세까지 담아내며 극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흐름이 소설의 서사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걸 보면, 라이네케가 단순히 음악 형식을 따른 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악장을 설계했다는 게 분명합니다.
춤추는 운디네
1악장은 e단조, 6/8박자의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피아노 반주가 만들어내는 물결 같은 흐름 위에 플루트의 선율이 자유롭게 흘러가는데, 이게 정말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노니는 요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이 악장을 연주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프레이징의 연결이었습니다. 슬러 안에서 중저음 소리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입술 위치를 움직이는 대신 배의 힘으로 공기를 일정하게 밀어내야 했습니다.
특히 제1주제가 제시될 때 나오는 상하행 도약 진행은 운디네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잔잔했다가 갑자기 거칠어지는 호수의 모습처럼, 다이내믹의 대조를 확실하게 살려야 이 캐릭터가 살아납니다. 제2주제는 좀 더 부드럽고 서정적인데, 이 부분에서 피아노의 분산화음이 물결의 빠른 움직임을 연상시킵니다. 소설에서 운디네가 어부 노부부의 오두막에서 한적하게 살다가 훌트브란트라는 기사를 만나게 되는 장면과 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입니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음형들이 플루트와 피아노를 오가며 대화하듯 진행되는데, 이 부분을 연주하면서 저는 운디네와 훌트브란트가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떠올렸습니다. 재현부에서 다시 돌아온 제1주제는 처음보다 한결 성숙한 느낌으로 들리는데, 이는 사랑에 눈뜬 운디네가 천진난만함을 벗고 한 사람의 여인으로 성장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론도
2악장은 b단조, 2/4박자의 론도 형식입니다. 제가 이 악장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16분음표 스타카토가 짧게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경쾌한 리듬이었습니다. 이 리듬이 운디네의 발랄하고 유쾌한 성격, 그리고 사랑에 빠진 소녀의 설렘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훌트브란트에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요정의 춤을 연상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연주할 때는 짧은 스타카토를 깨끗하게 내기 위해 싱글 텅잉과 더블 텅잉을 적절히 섞어 사용했습니다. 특히 빠른 템포에서 옥타브 도약이 나올 때는 손가락과 혀와 바람이 정확히 일치해야 깔끔한 소리가 나옵니다. B섹션에서는 갑자기 부점 리듬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바뀌는데, 이 부분이 소설 속에서 운디네와 훌트브란트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장면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다시 A'섹션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의 경쾌한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결혼식 장면을 묘사하는 C섹션에서는 'Piu lento, quasi Andante'로 템포가 느려지며 비브라토 없이 신비롭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는 중간 텅잉을 세게 내지 않고 편한 호흡으로 선율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일정한 바람 세기를 유지하면서 한 음 한 음에 많은 공기를 쏟아붓지 않아야 신비로운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사랑과 불안
3악장은 G장조, 4/4박자의 3부 형식입니다. 전 악장 중 가장 느린 'Andante tranquillo'로 시작하는 이 악장은, 운디네와 훌트브란트가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A섹션에서는 플루트와 피아노가 마치 대화하듯 주고받으며 진행되는데, 제가 연주할 때는 슬러의 첫 번째 음을 테누토로 처리해서 표현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설에서 운디네는 결혼 후 천진난만함을 벗고 차분한 숙녀로 변합니다. 이 변화가 3악장의 서정적이고 성숙한 선율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B섹션에 들어서면 갑자기 3연음이 빠르게 등장하며 'Molto vivace'로 템포가 바뀝니다. 이 부분은 운디네의 친척 퀼레보른이 나타나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저는 이 3연음 부분을 연주할 때 트리플 텅잉을 사용했습니다. 빠른 박자 안에서 슬러와 텅잉을 정확히 구분하려면 이 기법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불안감과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려면 아티큘레이션이 명확해야 하는데, 두음 슬러와 스타카토 연음, 전체 텅잉을 확실히 구분해서 연주해야 극적인 효과가 살아납니다. 다시 A'섹션으로 돌아오면 원래의 조성과 템포로 돌아가며, 앞으로 닥칠 시련을 암시하는 동시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랑의 온기를 전합니다.
영원한 사랑
4악장은 e단조, 4/4박자의 3부 형식으로, 전 악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극적입니다. 'Allegro molto'로 시작하는 이 악장은 처음부터 격정적인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훌트브란트가 베르탈다라는 귀족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운디네는 남편의 변심을 느끼며 슬픔과 분노에 휩싸입니다. 플루트의 도약 선율과 피아노의 16분음표 반복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분위기가, 이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제가 이 악장을 연주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두음 슬러로 이루어진 당김음 선율이었습니다. 점 8분음표를 악센트와 함께 길게 불고, 중간에 호흡을 쉬지 않으면서 공기를 앞으로 밀어내야 불안감이 고조되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Piu tranquillo'로 템포가 느려지는 부분에서는 3연음이 등장하며 운디네의 슬픔을 더 애절하게 표현합니다. 이 부분은 한 프레이징으로 보고 한 호흡으로 연주해야 나타냄말에 맞는 고요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는 스타카토로 이루어진 3연음이 점점 빨라지며 ff까지 세기가 커집니다. 플루트가 옥타브 음역까지 사용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데, 이 부분이 바로 운디네가 훌트브란트의 결혼식에 나타나 키스로 그의 목숨을 거두는 장면입니다. 손가락과 혀와 바람이 정확히 일치해야 깨끗하면서도 강렬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iu lento' 부분에서는 지금까지의 격렬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서정적이고 느린 선율이 흐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죽인 후 무덤 곁을 영원히 지키는 운디네의 모습을 묘사하는 이 부분은, 비브라토 없이 최대한 애절하게, 긴 호흡으로 연주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마지막 부분을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낍니다. 배신당했지만 끝까지 사랑을 지키는 운디네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라이네케의 플루트 소나타 '운디네'는 단순한 기교 연습곡이 아니라, 한 편의 동화를 음악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각 악장마다 운디네의 감정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플루트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향이 물의 요정이라는 소재를 생생하게 살려냅니다. 화려한 기교 속에서도 음악이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점이, 제가 이 곡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푸케의 소설을 먼저 읽고 연주한다면, 이 곡이 전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