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은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피아노가 홀로 8마디의 화음을 연주하는데, 그 첫 화음조차 이 곡의 으뜸조인 C단조가 아닙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꽤 충격이었습니다. 협연을 직접 준비하면서 악보를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냥 웅장하게 시작하는 곡 정도로만 들었거든요.
1악장 구조 분석 — 종소리에서 시작된 음악
1악장은 소나타 형식(Sonata form)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프닝 8마디는 흔히 '크렘린 종소리'라고 불립니다. pp(피아니시모)에서 ff(포르티시모)까지 점진적으로 음량을 키우는 poco a poco crescendo가 적용되어 있는데, 여기서 crescendo란 음량을 서서히 크게 만드는 연주 기법을 의미합니다. 이 8마디가 끝나면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반주 위에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들고 들어옵니다. 아르페지오(arpeggio)란 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을 동시에 치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퉁겨 올리는 주법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아르페지오 안에 A♭, D 같은 불협화음을 섞어 화성이 모호하게 들리도록 했습니다. 분석해 보면 으뜸화음인데, 귀로 들으면 어딘가 불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2주제는 79마디부터 E♭장조로 등장합니다. 비올라가 먼저 선율을 꺼내는데, 라흐마니노프가 즐겨 쓴 아치 패턴(arch-pattern)이 나타납니다. 아치 패턴이란 같은 선율을 한 번은 조용하게, 이어서 한 번은 더 크고 풍성하게 반복하여 음악적 포물선을 그리는 구성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악보를 보면서 연습할 때, 이 부분의 오른손이 단선율에서 옥타브로 바뀌는 지점을 찾았을 때 "아, 이래서 자동으로 커지는구나"라는 게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발전부(mm.161~244)에서는 제1주제가 변형되고, C단조에서 C장조로 조성이 이동합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반복하는 리듬 동기(♩♫♬│♩)는 종소리를 연상시키는데, 이 리듬이 3악장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이런 식으로 재료를 공유하는 방식을 순환 동기(cyclic motive)라고 합니다. 순환 동기란 한 작품의 여러 악장에 걸쳐 동일하거나 변형된 음악 소재를 반복 사용하여 전체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기법입니다.
1악장을 준비하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재현부(mm.245~)의 Maestoso alla marcia 지점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종소리 동기를 규칙적으로 울리는 동안 현악기가 제1주제를 연주하는 구조인데, 이 부분은 피아노가 반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대에 서보면 이 장면이 가장 압도적으로 들립니다. 제가 직접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때, 현악 단원들의 소리가 등 뒤에서 밀려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감각은 녹음이나 독주 연습으로는 절대 익힐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협연을 준비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아노 전공 친구와 2대 피아노로 매일 맞춰보는 것이 오케스트라 리허설보다 연습 밀도가 높습니다.
- 홀이 클수록 다이나믹 폭을 평소보다 넓게 잡아야 합니다.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맞추려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 서정적 솔로 구간에 특히 집중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 없이 피아노 혼자 노래하는 구간은 홀 전체의 시선이 한 지점으로 쏠리기 때문입니다.
- 지휘자와 코다 템포 합의를 미리 해두면 연주 당일 심리적 부담이 줄어듭니다.
협연 경험 — 반주자가 솔리스트 자리에 섰을 때
저는 2020년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협연했습니다. 입시 때부터 이 곡을 매일 들었고, 대학원 졸업곡도 라흐마니노프 작품으로 골랐을 만큼 오랫동안 꿈꿔온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첫 리허설은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반주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솔리스트를 옆에서 받쳐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저를 받쳐주는 반대 상황에 놓이자, 부담감이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첫 리허설에서 중간에 멈추는 일까지 생겼고, 수많은 단원들 앞에서 상당히 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뒤로 전략을 바꿨습니다. 피아노 전공 친구에게 부탁해 2대 피아노 연습실에서 거의 매일 맞춰 연습했습니다. 반주 경험이 풍부한 만큼, 다른 악기의 음색과 연주 동작이 머릿속에서 자꾸 떠올라 집중력이 흩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 음악에만 집중한다'는 원칙 하나를 잡고 연습을 반복했고, 두 번째 리허설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휘자와의 호흡은 반주 커리어 덕분에 오히려 자연스러웠습니다. 이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연주 당일에는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무대 긴장을 완화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인데놀(propranolol)을 리허설 때 한 번, 그리고 본 공연 전에 또 한 번 복용했습니다. 인데놀은 베타 차단제(beta blocker) 계열의 약물로, 심장 박동을 안정시켜 무대 공포를 줄이는 데 사용하는 약물입니다. 권장 용량은 10mg인데, 저는 두 번 복용하면서 결과적으로 머리가 멍해졌고 초반에 기억이 끊기는 실수로 이어졌습니다. 무대 약물 사용에 대해 "효과가 있다"는 분들도 계시고, "오히려 반응을 둔하게 만든다"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용량 조절 없이 무심코 복용하는 건 위험합니다. 다행히 정신을 수습하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금관 파트의 음정 불안이었습니다. 제가 금관악기 반주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유독 예민하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클라이맥스 구간에서 금관이 흔들리면 솔리스트 입장에서도 순간적으로 호흡이 흐트러집니다.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솔리스트의 음악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주는지, 반대로 얼마나 흔들리게 할 수 있는지를 그날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무대 공포와 협연 준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솔리스트는 반주 파트너와의 반복적인 앙상블 연습이 실제 공연 무대에서의 심리적 안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무대 공포 관련 약물 사용에 대해서는 의료 전문가의 상담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작품을 Nicolai Dahl 박사에게 헌정한 것은 단순한 감사 표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심리 치료를 통해 다시 작곡을 시작한 작곡가가 만든 이 음악에는,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 역시 첫 협연의 긴장과 실수와 감동을 거치면서, 라흐마니노프를 음악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으로 이해하게 된 한 해였습니다.
협연을 꿈꾸는 분이 계신다면, 악보 분석보다 먼저 오케스트라 음원을 귀에 완전히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소리가 몸에 배어 있어야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참고: - 신애정, "협주곡 1번 올림 바단조 작품1", 피아노음악 제142호, 음악춘추사, 1994
- Jacques-Emmanuel Fousnaquer, Rachmaninoff, 김인심(역), 중앙일보사, 1995
- 조숙현, "협주곡 제2번 다단조 작품18", 피아노음악 제142호, 음악춘추사, 1994
- Barrie Martyn, Rachmaninoff: Composer, Pianist, Conductor, Scolar Press, 1990
- Geoffrey Norris, Rachmaninoff, Schirmer Books,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