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020년 제 인생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협연했습니다. 입시 때부터 이 곡을 매일 들었고, 대학원 졸업곡도 라흐마니노프 작품으로 골랐을 만큼 오랫동안 꿈꿔온 무대였습니다. 오늘은 이 곡을 준비하면서 제가 직접 겪었던 연습 과정과 어려움. 그리고 성공적인 무대를 마치기 위한 연습 방법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1악장 구조 분석 — 종소리에서 시작된 음악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8마디는 종종 ‘크렘린의 종소리(Kremlin bells)’라고 불립니다. pp(피아니시모)에서 ff(포르티시모)까지 점차 커지는 poco a poco crescendo를 통해,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만듭니다. 이 8마디가 끝나면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반주 위로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연주하며 들어옵니다.
아르페지오(arpeggio)는 화음을 동시에 치지 않고 빠르게 순차적으로 연주하는 주법입니다. 이 부분에서 라흐마니노프는 A♭와 D 같은 불협화음을 아르페지오 위에 더해 화성을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으뜸화음이지만, 실제로 들으면 어딘가 불안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 모호함이 이 도입부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제2주제는 79마디부터 E♭장조로 등장합니다. 선율은 비올라에서 처음 제시되며, 여기에는 라흐마니노프가 즐겨 사용하던 장치인 아치 패턴(arch pattern)이 사용됩니다. 이는 하나의 선율을 처음에는 절제된 방식으로 제시하고, 이후 더 확장되고 풍부한 방식으로 반복하여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연습하면서 왜 음악이 자연스럽게 커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른손이 단선율에서 옥타브 진행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악보 속 그 전환을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해되었습니다.
발전부(mm.161–244)에서는 제1주제가 변형되며, 조성은 C단조에서 C장조로 이동합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반복하는 리듬 동기는 다시 한번 종소리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이 리듬 아이디어가 3악장에서도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음악적 소재를 여러 번 반복 사용하는 기법을 순환 동기(cyclic motive)라고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러한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협주곡 전체에 배치함으로써 작품 전체에 강한 통일감을 부여합니다.
협연 경험 — 반주자가 솔리스트 자리에 섰을 때
이 협주곡을 준비하던 당시, 첫 리허설은 악몽과도 같았습니다.ㅍ저는 오랫동안 반주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솔리스트들을 피아노 옆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저를 받쳐주는 입장이 되자, 그 부담감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첫 리허설에서는 곡 중간에 멈추기까지 했고, 그렇게 많은 연주자들 앞에 서 있는 상황은 꽤나 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연습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저는 친한 피아노 전공 친구와 거의 매일 2대 피아노 연습실에서 함께 맞춰보며 연습했습니다. 반주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연주하면서도 자꾸 머릿속에 다른 악기들의 음색과 움직임이 떠올라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하나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내 음악에만 집중하자.”
흥미로웠던 점은, 지휘자와의 소통이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아마 반주 경험 덕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공연 당일에는 아쉽게도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무대 긴장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약인 인데놀(Indenol, propranolol)을 리허설 때 한 번, 공연 직전에 또 한 번 복용했습니다. 프로프라놀롤은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무대 공포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베타 차단제(beta blocker) 계열의 약물입니다. 권장 용량은 10mg이었지만, 저는 두 번 복용했고 그 결과 머리가 멍해졌으며 공연 초반에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연주자들은 이런 약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런 약은 가볍게 생각하고 임의로 복용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어떻게든 정신을 추스르고 끝까지 연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면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금관 파트의 음정 불안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금관악기 연주자들과 많이 작업해 본 경험이 있어서 더 예민하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금관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솔리스트 역시 순간적으로 호흡과 집중력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날 저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솔리스트의 연주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혹은 반대로 얼마나 흔들어놓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협주곡을 준비하면서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아노 전공 친구와 2대 피아노로 매일 맞춰보는 연습은 오케스트라 전체 리허설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 공연장이 클수록 더 넓은 다이내믹 범위가 필요합니다.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 서정적인 솔로 구간에는 특별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피아노만 남는 순간, 홀 전체의 시선과 집중이 하나의 선율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 공연 전에 지휘자와 코다의 템포를 미리 합의해두면 공연 당일의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협주곡이 단순한 감사의 의미로만 Nikolai Dahl에게 헌정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리 치료를 통해 다시 작곡을 시작하게 된 작곡가가 만든 음악인만큼, 이 작품 안에는 무기력과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느껴집니다.
저 역시 첫 협연에서의 긴장과 실수, 그리고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Sergei Rachmaninoff의 음악을 단순히 ‘연주’로서가 아니라 감정 자체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언젠가 협주곡 연주를 꿈꾸는 분이 있다면, 제일 먼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몸에 완전히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그 소리가 몸 안에 스며들어 있어야만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목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