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후반, 유럽 음악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던 러시아에서는 독특한 음악적 흐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제 군주 체제와 외세의 압제 속에서 민족의식이 싹트며, 작곡가들은 자국의 민요와 언어, 역사를 음악의 재료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서구 유럽의 화성 규칙을 과감히 거부하고 러시아 고유의 음악 어법을 창조해냈습니다. 특히 러시아 5인조로 불리는 작곡가 그룹은 민족주의 음악 운동의 선봉에 서서 러시아 음악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렸습니다.
러시아 5인조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발전은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러시아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조국전쟁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러시아 국민들은 이 과정에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고,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예술 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음악 출판이 활발해지고 음악 교육이 뿌리내리면서, 1862년 안톤 그리고리예비치 루빈슈타인이 러시아 최초의 국립 고등 음악 교육 기관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했습니다. 이 음악원의 대표적인 졸업생으로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가 있으며, 그는 1866년 설립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1850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강력한 소수'라고 불리는 작곡가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를 필두로 알렉산더 보로딘, 세자르 큐이,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르그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로 구성된 이들은 러시아 5인조로 불리며 민족주의 음악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흥미롭게도 발라키레프를 제외하고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이들의 아마추어성은 오히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만드는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전통적인 화성과 대위법을 모르기 때문에 서구 유럽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한 러시아 색채를 품은 음악 양식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론가 블라드미르 바실리예비치 스타소프는 이들의 개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발라키레프는 영감 풍부하고, 큐이는 멋있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참 박식하다. 보로딘은 깊이가 있고 무소르그스키는 재능이 뛰어나다." 이들은 러시아 민요를 연상시키는 선율, 선법적 화성, 자국 언어의 리듬과 억양을 음악에 담아냈으며, 프로그램 음악과 성악 음악 장르를 선호했습니다. 러시아 음악의 위상을 서유럽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이들의 공헌은 단순히 음악사적 의의를 넘어, 민족의 정체성을 음악 언어로 번역해낸 문화적 성취였습니다.
무소르그스키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르그스키는 1839년 3월 21일 러시아 남부의 카레보에서 태어났습니다.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 가문의 4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어릴 적 유모로부터 러시아 민요를 접하며 성장했습니다. 7세에 리스트의 소품을 연주하고 9세에 존 필드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근위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사관학교 졸업 후 군인이 된 그는 1856년 같은 근무지의 군의관이던 보로딘과의 만남을 계기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재점화했습니다. 다르고미시스키, 큐이, 발라키레프, 스타소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친분을 맺으며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 되었고, 1858년 퇴역 후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860년대 농노해방으로 가세가 기울자 무소르그스키는 운수 통신성에서 일하며 작곡 활동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1865년 어머니의 사망 이후 알콜 중독 증세를 보였지만, 형의 보살핌으로 회복하며 음악적으로 가장 완숙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에 교향적 판타지 「민둥산의 하룻밤」과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작곡했으며, 1874년에는 절친한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보고 감명받아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알콜 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건강을 잃은 그는 1881년 육군병원에서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당시 모호하고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러시아 5인조 중 가장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곡가로 평가됩니다. 그의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과장이나 꾸밈없이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태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사물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러시아 민속 음악에서 사용되는 온음계, 5음음계, 자연단음계, 교회 선법을 적극 활용했으며, 서양 음악에서 금기시하던 평행 7화음, 연속적인 4도와 5도 진행을 과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E♭Major 음계에서 6음과 7음을 반음 내린 독자적인 음계를 창조하기도 했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무소르그스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앞으로 그를 사랑하게 될 사람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감동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의 예술이 기교, 또는 무미건조한 법칙들로부터 자유롭기에, 그는 독창적이며 계속 독특하게 남을 것이다." 실제로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적 특징들은 이후 인상주의 음악과 20세기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람회의 그림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로, 표제음악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874년 작곡된 이 곡은 절친한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관람한 후 감명받아 작곡되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하르트만의 그림 속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풍경의 인상을 음악으로 그려낸 인상주의 작곡가들과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그는 그림 속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생생히 표현해냄으로써 사실주의적 성향을 드러냈습니다. 후대에 많은 작곡가들이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으며, 특히 모리스 라벨의 편곡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리듬과 박자에서도 혁명적인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가곡집 「어린이의 방」의 첫 곡 '유모와'에서는 53마디 동안 박자가 24번 변화하며, 매 마디 박자가 다른 부분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박자와 리듬 사용은 러시아어의 악센트와 러시아 민요의 종지법, 고대 교회 찬송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2/4박자의 우크라이나 민속 무용인 호파크의 리듬을 오페라 「소로친치의 장날」에 사용하는 등 민속 춤곡 리듬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규칙적인 강약 반복을 거부하고 전타음을 즐겨 사용했으며, 변박을 빈번히 사용함으로써 당시 리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리듬 사용법은 20세기 음악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리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율적 측면에서 무소르그스키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6도 이상 도약을 피했으며, 한 마디 안에 6, 7개 이상의 음정을 사용하지 않아 선율의 형태를 명료하게 유지했습니다. 경과음과 캄비아타가 자주 나타나는 반면 계류음은 비교적 드물게 사용했습니다. 화성적으로는 예비와 해결이 없는 7음을 사용하고, 연속적인 4도와 5도 진행을 통해 기존 서양 음악의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프롤로그 2장에서는 두 7화음의 병렬 진행이 등장하는데, 이는 화음의 기능을 무시한 것으로 서구 유럽의 화성 어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소한 방식이었습니다. 증4도를 강조하여 으뜸음과 딸림음의 기능을 약화시킴으로써 조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특징도 보입니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A-B-A'의 세도막 형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과장이나 꾸밈을 지양하는 그의 사실주의적 태도를 반영한 것으로, 단순함과 명료함을 통해 음악의 본질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피아노 음악 역사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기악 음악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그의 개성적이고 대담한 창조 정신은 19세기 러시아 국민 음악뿐만 아니라 20세기 음악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세련됨보다 진실함을 선택한 결과물입니다. 거칠고 불균형해 보이는 선율과 화성은 러시아 민요와 언어의 억양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며, 귀족적 미학에서 벗어나 민중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냈습니다. 그의 솔직함은 때로 불완전하게 들리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강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민족주의를 장식이 아닌 현실의 언어로 만든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진정성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