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 유럽 문화계를 뒤흔든 발레뤼스의 등장은 단순한 공연단의 성공을 넘어선 문화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1910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불새'는 러시아적 감수성과 파격적 음악, 그리고 혁신적 안무가 결합하여 서구 발레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발레 리스가 보여준 예술적 혁신의 본질과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파격성, 그리고 러시아 발레가 세계 무용사에 남긴 유산을 살펴보겠습니다.
불새
19세기 말 우아함과 매너리즘에 갇혀 쇠퇴해 가던 발레는 러시아의 발레뤼스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끌었던 발레뤼스는 완벽한 예술적 기교와 풍부하고 생명력 넘치는 표현성으로 콧대 높은 파리의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은 불세출의 발레리노 니진스키,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카르사비나, 올가 스페시브체프 등 기라성 같은 무용수들을 배출했고, 미하일 포킨, 레오니드 마신, 바츨라프 니진스키 등 혁신적인 안무가들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디아길레프는 발레 리스 창단 이전부터 예술 사업가로서 러시아 예술을 서구에 알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러시아와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전시회와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기획했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발레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1909년 러시아 황실 극장의 무용수들을 모아 파리로 데려가며 발레뤼스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초기 공연은 놀라운 테크닉으로 극찬받았지만 동양적 색채나 민족적 특색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이에 디아길레프는 최초의 러시아적 발레를 창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는 작곡가 아나톨리 리아도프에게 "러시아적 오페라, 러시아적 교향곡, 러시아적 노래, 러시아적 춤, 러시아적 민담은 있지만 러시아적 발레는 없다"며 불새 음악을 청탁했습니다. 하지만 리아도프의 잔잔하고 우아한 음악 스타일이 불새의 강렬한 분위기에 적절하지 않았고, 우연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관현악 작품을 접한 디아길레프와 안무가 포킨은 즉시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음악이야말로 불타오르는 형상을 위해 기대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당시 무명의 젊은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는 1909년 불새의 작곡을 시작하여 이듬해 봄 완성했습니다. 1910년 6월 25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불새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마르셀 프루스트,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등 문화계 저명 인사들이 모두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여러 차례 커튼 콜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 작곡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파리 청중에게 던진 충격은 그 파격적인 화성과 리듬에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향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불협화음을 사용하면서도 긴장감을 지속시키는 화성, 매우 격렬하고 빠른 리듬의 불규칙한 변화, 그리고 강렬한 색채감과 역동성은 청중이 원하던 순수한 러시아적 감각을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혁신은 단순한 기법의 새로움을 넘어 문명사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유럽인들은 원시적 생명력과 문명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은 시초의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세련되었지만 노쇠하고 메말라 가던 서유럽 문화의 피로감을 느끼던 파리 관객에게, 이는 현대 문명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새의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고갈되어 가던 유럽 문명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을 환기시켰고, 한 문화사가는 "표트르 1세 이후 서구를 향한 창이 이제 갑자기 동쪽을 향한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오늘날 의미
불새의 성공 요인은 음악뿐 아니라 포킨의 혁신적 안무에도 있었습니다. 그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고전 발레의 전형적 동작에 거칠지만 강렬한 민속춤과 자연스러운 몸 동작을 결합한 새로운 발레를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발레에서 파리 관객들은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레프 박스트와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만든 강렬하고 이국적인 무대 장치와 의상은 넘쳐나는 원시성과 활기를 뿜어냈습니다.
불새는 동양성, 즉 오리엔탈리즘이 품은 생명력 및 활기를 통해 고갈되어 가던 유럽 문명의 새로운 대안을 암시했습니다. 고전 발레의 유럽적이고 우아한 몸으로부터 더 이상 나갈 곳이 없었던 발레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타오르는 불과 같은 강렬한 생명의 역동을 가진 동양적인 몸을 받아들임으로써 되살아났습니다. 박스트는 "미개 예술의 꾸밈없는 형식들은 유럽 예술이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발레뤼스는 러시아를 휩쓴 전쟁과 혁명으로 결국 해체되었지만, 구성원들은 유럽과 신대륙 각국으로 퍼져 나가 러시아 발레의 유산을 전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발레 역사는 발레뤼스가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발레뤼스의 레퍼토리는 세계 각지의 무대에서 여전히 공연되고 있습니다. 불새 역시 영원히 강렬한 러시아적 영감으로 타오르며 세계 발레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불새를 통해 구축한 혁신적인 음악 세계는 이후 현대 음악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파격적인 시도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예술이 생명력을 되찾는 길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발레뤼스와 불새가 보여준 예술적 용기와 혁신 정신은 현대 예술가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영원한 등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