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리게티의 피아노 에튀드 악보를 펼쳤을 때 저는 그냥 "어려운 현대 음악이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직접 분석하고 소리를 들으면서 깨달은 건, 이 곡들이 단순한 기교 훈련이 아니라 작곡가의 온 음향 세계가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1985년부터 2001년까지 16년에 걸쳐 완성된 전 18곡, 그 안에는 아프리카 리듬부터 전자음악, 가믈란까지 녹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 구조와 연주 접근법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16년의 작업이 만들어낸 배경: 리게티는 왜 에튀드를 썼을까
혹시 "작곡가가 피아노를 잘 못 쳐서 에튀드를 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리게티가 딱 그 경우입니다. 그는 14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그 테크닉적 한계가 오히려 연주하기 극도로 어려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약점이 걸작의 씨앗이 된 셈이니까요.
리게티는 작곡에 앞서 "내면의 귀(inner ear)"로 작품 전체를 먼저 듣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내면의 귀란 악기의 실제 음색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음악을 구성하는 작곡가의 내적 청각 능력을 말합니다. 그는 추상적 음악은 구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정도로, 소리의 질감과 색깔을 먼저 상상하고 그것을 악보로 옮겼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다양한 음악 외적 영향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프리카 폴리리듬, 인도네시아 가믈란 음악, 미국 자동피아노 작곡가 콘론 낸캐로우의 극단적 복합 리듬, 그리고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접한 마디 없는 연속적 음향이 그것입니다. 각 에튀드의 제목이 프랑스어, 헝가리어, 독일어, 영어로 다양하게 붙은 것도 이러한 다문화적 배경을 반영합니다. 제7곡 '갈람 보롱(Galamb Borong)'은 헝가리어 표기지만 사실 인도네시아 가믈란 음악을 가리키며, 단어 발음 자체가 '가믈란'과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선택된 이름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꽤 당황했는데, 리게티의 언어 유희 감각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폴리리듬, 폴리미터, 폴리템포: 핵심 리듬 구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 작품들의 가장 복잡한 층위, 바로 리듬 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리게티는 자신의 다성부 작법을 "다차원적인 폴리포니(mehrdimensionale Polyphonie)"라고 불렀습니다. 다차원적인 폴리포니란 단순히 여러 성부가 동시에 울리는 것이 아니라, 각 성부가 서로 다른 박절 구조와 속도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개념이 핵심입니다.
- 폴리리듬(Polyrhythm):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이 동시에 중첩되는 방식. 예를 들어 제1곡 '무질서'에서 오른손은 3+5+3+7의 패턴, 왼손은 3+5+3+8의 패턴으로 출발해 점차 엇갈리며 균열을 만듭니다.
- 폴리미터(Polymeter):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다른 박자표를 갖는 방식. 제5곡 '무지개'는 오른손 3/4박자, 왼손 2박자로 진행되어 두 손이 서로 다른 박절 단위에서 화음을 제시합니다.
- 폴리템포(Polytempo): 서로 다른 음가를 가진 성부들이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각각 다른 빠르기를 형성하는 방식. 제6곡 '바르샤바의 가을'에서 16분음표 성부와 점4분음표 성부가 5:3의 비율로 중첩됩니다.
제6곡을 직접 분석해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실감했습니다. 악보에 표기된 마디선은 박절 구조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리게티는 이를 명시적으로 밝혔는데, 마디선은 오직 기보와 연주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이 점을 모르면 오른손 패턴을 마디 기준으로 연습하게 되고, 결국 작곡가가 의도한 어긋남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제가 처음 제1곡 '무질서'를 연습할 때 정확히 그 실수를 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악삭 리듬(Aksak rhythm)입니다. 악삭 리듬이란 2와 3의 비대칭적 조합으로 이루어진 리듬 구조로, 터키와 발칸 반도 등 동유럽 민속 음악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제4곡 '팡파레'의 오스티나토 패턴 3+2+3이나, 제13곡 '악마의 계단'의 2+2+3 패턴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리듬은 귀로 들을 때 계속 박자를 "어디서 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기묘한 불안정감을 줍니다.
음향 구현
분석을 했다고 연주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이론은 이해했는데 손이 따라가지 않는 경험을 숱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리게티가 상상한 소리를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리게티는 음향 소재를 몇 가지로 집중해서 씁니다. 클러스터, 완전5도, 3화음, 7화음, 온음음계가 그것입니다. 클러스터(cluster)란 인접한 음들을 빠르게 연속 타건하여 음들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음향 덩어리처럼 들리게 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제10곡 '마법사의 제자'에서 리게티는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의 템포로 세 음짜리 패턴을 반복시키는데, 이를 통해 개별 음이 아니라 색채가 서서히 변화하는 음향 덩어리를 의도했습니다. 그는 이 곡의 템포 기준으로 하프시코드를 위한 《콘티눔》을 언급했는데, 그 작품 역시 빠른 반복으로 연속적 음향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페달 사용도 매우 중요합니다. 제5곡 '무지개'에서는 "con ped."(페달 사용)을 명시하고, 양손이 서로 다른 박절에서 7화음을 내기 때문에 화음이 과도하게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이어지도록 손페달(손가락으로 음을 지속시키는 기법)을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반대로 제10곡은 "sempre senza ped."(항상 페달 없이)를 요구합니다. 하프시코드의 건조한 타격음처럼 연주하기 위해서입니다.
미크로폴리포니(Micropolyphony)라는 개념도 에튀드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미크로폴리포니란 수많은 성부가 극히 미세한 음고 차이로 움직이며 단일한 음향 덩어리처럼 들리게 하는 리게티 초기의 작법인데, 피아노 에튀드에서는 빠른 패턴의 반복과 성부 중첩을 통해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제9곡 '현기증'의 반음계 하행 선들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무한히 떨어지는 듯한 착시 음향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무한음계(Shepard Scale)의 원리라고도 부르는데, 무한음계란 실제로는 같은 음역을 맴돌지만 심리음향학적으로 무한히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처럼 들리는 전자음향 기법입니다.
연주법적으로 특히 제가 유용하게 쓴 방법 하나를 공유하자면, 비대칭 패턴을 세분화(Subdivision)하는 방식입니다. 제15곡 B 부분처럼 13개의 8분음표 단위로 악센트가 붙는 경우, 이를 통째로 세는 대신 5+3+5 또는 2+3+3+5로 내부를 나누어 인식하면 정확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번거롭지만 익숙해지면 패턴이 손에 붙는 속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현대음악 연주 분야의 학술 기반은 꾸준히 쌓이고 있습니다. 스위스 바젤의 파울 자허 재단(Paul Sacher Stiftung)은 리게티를 포함한 20세기 이후 현대 음악 필사본과 스케치를 소장하며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1차 자료를 제공합니다(출처: 파울 자허 재단). 리게티가 에튀드의 제목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어떤 순서로 곡들을 매칭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스케치 노트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국제음악정보센터(RILM Abstracts)는 리게티 피아노 에튀드에 관한 학술 논문들을 지속적으로 수록하고 있어, 분석과 해석의 방향을 넓히는 데 참고할 수 있습니다(출처: RILM).
리게티 피아노 에튀드는 기교를 갈고닦는 연습곡이면서 동시에 20세기 후반 음악 언어의 정수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악보를 다시 펼친다면, 마디선보다 패턴의 시작점을, 음고보다 음색의 변화를, 다이내믹 기호보다 작곡가가 상상한 소리를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분석이 연주의 적이 아니라 상상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작품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먼저 한 곡씩 귀로 충분히 들은 다음 악보를 여는 순서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