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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단테 소나타 (지옥의 입구, 천국의 문, 환상곡)

by 진헤 2026. 3. 7.

제가 처음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 「Après une lecture du Dante」 악보를 펼쳤을 때 굉장히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옥타브가 끝없이 이어지고, 화음은 손을 찢어놓을 것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곡을 파고들수록, 이 작품이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니라 단테의 신곡을 음악으로 재구성한 하나의 서사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테 소나타 악보

 

지옥의 입구

 

곡은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증 4도 음정, 즉 트리톤(tritone)으로 시작하는데, 이 음정은 중세 시대에 '악마의 음정(Diabolus in Musica)'이라 불릴 만큼 불안정하고 불길한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트리톤이란 온음 3개로 이루어진 음정으로, C에서 F#처럼 3옥타브를 하행하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의 추락을 표현합니다. 리스트는 이 음정을 옥타브로 제시하며 곡의 전체 분위기를 암시합니다.

제가 직접 연습하면서 느낀 건, 이 부분은 단순히 세게 치는 게 아니라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건반을 때리기 보다는, 팔 전체를 이용해 건반 깊숙이 눌러야 지옥의 무거운 공기가 표현됩니다. 도입부 이후 제시부에서는 d minor 조성으로 제1주제가 등장하는데, 반음계적 진행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망령들의 신음소리를 묘사합니다. 당김음과 불협화음이 겹쳐지면서 공포감은 극대화됩니다.

 

천국의 문

제시부의 제2주제는 제1주제와 3도 관계인 F# Major 조성으로 전환되며 천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두운 지옥에서 갑자기 빛나는 천상으로 이동하는 순간, 피아노는 폭발적인 음향으로 울립니다. 옥타브 패시지가 풍성한 화음으로 쌓이며 fff(포르티시시모)의 악상이 요구되는데, 오케스트라의 투티(tutti)와 같은 효과를 내야 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연주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음량을 유지하면서도 소리가 거칠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트럼펫같은 금관악기를 주로 반주하다보니 직관적인 터치와 때리는 소리를 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목을 유연하게 유지하고 팔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실어야 깨끗한 음향이 나옵니다.

124-135마디 부분에서는 제1주제가 셋잇단음표로 변형되며 C# Major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바뀝니다. 즉흥적 연주를 요구하는 'quasi improvisato' 지시어가 붙어 있어, 연주자의 해석이 중요한 대목입니다. 또한 157-158마디 에서는 'dolcissimo con amore(매우 부드럽고 사랑스럽게)'라는 표현으로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묘사합니다. 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베아트리체를 상징하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환상곡

이 곡의 부제는 'Fantasia quasi Sonata(소나타풍 환상곡)'입니다. 환상곡(fantasia)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곡된 곡을 의미하는데, 리스트는 여기에 소나타 형식의 틀을 결합했습니다. 곡은 도입부-제시부-발전부-재현부-코다의 구조를 가지지만,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과 달리 도입부와 코다가 곡 전체의 1/4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큽니다.

재현부는 A Major에서 시작해 D Major로 재현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원조로 돌아오는 원칙을 따릅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코다 부분에서 트레몰로 기법을 활용해 화려함을 극대화하고, 마지막에는 도입부의 증 4도 주제를 완전 5도로 해결하며 긴장감을 풀어냅니다.

제 경험상 이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페달링입니다. 리스트는 긴 페달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소리가 뭉개질 수 있습니다. 반 페달(half pedal)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면 음향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도 풍성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 페달을 사용할때는 피아노마다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꼭 실제 연주하는 피아노에서 리허설을 해보고 체크해야 합니다. 또한 옥타브 패시지를 연주할 때는 5번 손가락에 무게를 더 실어주면 선율이 또렷하게 들립니다.

 

이 곡을 연주하고 나면, 단순히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기교가 아니라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리스트는 단테의 지옥과 천국을 음으로 그려냈고, 우리는 그 여정을 피아노를 통해 경험합니다.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테의 신곡을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문학과 음악이 어떻게 만나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지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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