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1874년 친구 화가 하르트만의 추모 전시회를 관람한 후 빠르게 써 내려간 피아노 모음곡으로, 10개의 표제 음악과 5개의 프롬나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곡을 직접 연주 준비하면서 단순한 그림 묘사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철학적 여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투박한 화성과 정제되지 않은 리듬은 오히려 러시아적 정서를 더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프롬나드
「전람회의 그림」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프롬나드(Promenade)입니다. 프롬나드란 전시회를 관람하며 그림 사이를 걸어 다니는 관람자의 모습을 표현한 간주곡으로, 곡 전체에 걸쳐 7번 등장하며 다양한 성격으로 변주됩니다. 처음 네 번은 제목 없이 등장하고, 다섯 번째는 '프롬나드'라는 제목이 붙으며, 여섯 번째는 「카타콤베」 안의 '죽음의 말로 죽은 자들에게 하는 대화'에서, 마지막은 「키예프의 대문」 안에서 나타납니다.
제가 직접 연주를 준비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 프롬나드의 속도 표기였습니다. 'Allegro giusto, nel modo russico, senza allegrezza, ma poco sostenuto'는 '빠르게, 러시아 스타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진행'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nel modo russico(러시아 스타일)'란 서구 유럽의 규칙적인 박자감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요 특유의 자유로운 리듬감을 의미합니다. 5/4박자와 6/4박자가 교차하는 변박 구조는 연주자에게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박자감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발라키레프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5인조(발라키레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샤코프, 큐이)는 '거대한 소수, 힘 센 작은 그룹'이라는 비평가 스타소프의 표현처럼 서구 음악 형식에서 벗어나 러시아 고유의 민요, 역사, 종교를 음악의 기본 요소로 삼았습니다(출처: 한국음악학회). 제가 처음에는 단순히 민요 선율을 차용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악보를 분석해보니 화성 구조 자체가 서구와 달랐습니다.
「Promenade Ⅱ」와 「Promenade Ⅲ」에서는 캐논(Canon) 기법이 활용됩니다. 캐논이란 하나의 선율을 여러 성부가 시간 차이를 두고 모방하며 연주하는 대위법 기법을 말합니다. 이 부분은 단순한 화성진행과 애매모호한 조성 사용으로 인해 연주 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곡 전체를 끊기지 않게 레가토 주법으로 연결하여 통일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엘 쉐벨로프의 해석에 따르면 전체 작품은 '하르트만의 생애로 비추어 본 인생'이라는 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유년시절의 두려움(「난쟁이」), 용기(「옛 성」), 놀이(「튀일리 궁전의 정원」), 고통(「우마차」), 성(「달걀 껍질이 붙은 병아리의 춤」), 편견(「사무엘 골든베르크와 슈밀레」)을 다룹니다. 후반부로 넘어가는 가장 긴 프롬나드를 기점으로 「리모주의 시장」은 성인 시기의 혼란한 실제 생활을, 「카타콤베」는 철학적 고민을, 「닭발위의 오두막집-바바야가」는 시간에 대한 공포를,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은 이루지 못한 이상과 꿈을 상징합니다.
연주법
제1곡 「Gnomus(난쟁이)」는 Eb minor 3/4박자로 '항상 생기있게, 활발하게(Sempre Vivo)'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제가 깨달은 점은 공격적인 성격보다는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이 분위기를 살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악보에 나와있는 페르마타(fermata)와 쉼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순간적인 침묵은 두려움을 표현하는 데 더욱 효과를 줍니다.
17마디의 연속적인 sf(sforzando)는 빠른 속도에서 마치 스타카토 주법으로 연주됩니다.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버전에서도 이 부분을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강하고 날카롭게 스타카토로 표현했습니다. 제 경험상 38-44마디에서는 뒤에 나오는 포르티시모와 대조를 이루도록 메조피아노나 피아노로 친다는 기분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72마디의 트릴(trill)은 고르고 매끄럽게 표현해야 하는데, 마지막 코다(coda) 부분은 템포를 점점 빠르게 하고 소리도 점점 크게 하여 극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의 페달은 한 페달이 아닌 한 마디마다 빠르게 바꿔주었습니다. 고른 트릴과 스케일을 위해 저는 부분적으로 천천히 한 음 한 음을 연습하여 각 음이 빠지지 않게 극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2곡 「Il vecchio castello(옛 성)」는 g#minor 6/8박자로 'Andantino molto cantabile e con dolore(안단테의 빠르기로 매우 비애와 슬픔을 가지고 노래하듯이)'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곡의 감미로운 주요 선율은 편곡된 라벨곡에서 매우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가진 알토 색소폰과 바순이 연주하는데, 피아노 연주 시에도 그 부드러운 음색을 생각하면서 유연한 움직임을 표현해야 합니다.
이 곡은 주제 선율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특징인데 그로 인해 자칫 곡이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주제와 두 번째 주제의 셈여림을 다르게 하는 것이 또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3-26마디에서는 오른손 멜로디를 잘 살리기 위해 악보의 오른손 부분에 해당하는 낮은 음들을 왼손으로 연주했습니다. 또한 「The Old Castle」에서는 G# 음을 전체 악장의 고정 저음인 페달 포인트(pedal point)로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화성의 가능성을 높여 표현력을 높였습니다. 여기서 페달 포인트란 베이스에서 한 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다양한 화성을 전개하는 작곡 기법입니다.
「제10곡 La Grande Porte Kiev(키예프의 대문)」은 Eb major 4/4박자로 'Allegro alla breve, Maestoso, Con grandezza(빠르게 2/2박자로, 장엄하게 당당하게)'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곡은 론도(Rondo)와 변주(Variation) 두 형식의 결합으로 구성되는데, 론도란 주요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 사이에 다른 선율이 삽입되는 형식을 말합니다. 이러한 악곡 구조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마지막 곡으로서 매우 장엄하고 위엄있는 분위기의 곡이긴 하나 연주 시 첫 부분의 음향은 너무 크게 연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연습할 당시 강약 부호는 마지막 폭발적인 연주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차별화를 두어 피아노와 포르테의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코랄이 나오는 부분은 찬송가를 치듯 부드럽고 섬세하게 레가토를 신경썼습니다. 또 97마디의 마치 종소리를 내는 듯한 주요 음은 정확하게 들리도록 쳐야 하며 박자에 늦어지지 않게 연주해야 했습니다.
연주 기교 측면에서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난이도가 높습니다.
- 음색: 각 곡의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음색 표현 능력
- 셈여림: 피아니시시모부터 포르티시시모까지의 폭넓은 다이나믹 컨트롤
- 선명도: 빠른 패시지에서도 각 음이 명확하게 들리는 아티큘레이션
- 컨트롤 능력: 옥타브와 코드 연속에서의 근력과 지구력 관리
「리모주의 시장(Limoges le Marche)」에서는 스타카토와 예상치 못한 악센트 때문에 연습하기 가장 힘들었는데요. 저는 우선 천천히 연습하여 이음줄과 스타카토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악센트의 표현도 반드시 지켜야 하며, 작았다 커지는 부분을 잘 표현해 시끄럽고 활발한 시장의 분위기 속에 두 여자가 흥정하고 싸우는 모습이 연상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무소르그스키가 피아노적인 스타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곡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튀일리 궁전의 공원」 5-7마디의 왼손을 연주할 때 C#과 E#을 피아노로 동시에 소리내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래서 왼손을 빠른 아르페지오로 표현했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라벨의 관현악곡은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충실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데 있어 발생하는 문제점은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곡을 듣고 비교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관현악곡과 피아노곡이 같이 존재함으로써 연주를 하는데 어려움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페달의 다양한 기법도 사용했으며 힘의 적절한 사용, 건반 터치의 방법 등을 고민하고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화성, 정제되지 않은 리듬은 오히려 그림의 질감과 인간적 감정을 더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화려함보다 솔직함이 앞서는 이 음악은 러시아적 정서와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진정성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는 좋은 음과 아름다운 음악은 연주자 본인 스스로의 확고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단순히 친구의 그림을 음악으로 옮긴 표제 음악이 아니라, 인생의 여정 전체를 담아낸 철학적 작품입니다. 각 곡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이해하고,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특성을 파악하며, 기술적 난관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이 곡을 완성하는 진정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