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하르트만, 러시아 5인조, 프롬나드)

by 진헤 2026. 2. 9.

유럽건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친구인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의 추모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1874년 단 3주 만에 완성된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10개의 표제 음악과 5개의 프롬나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 작품은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며, 화성과 리듬의 독창성으로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순한 그림 묘사를 넘어 인생의 여정을 담아낸 철학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르트만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르그스키는 1839년 러시아 프스코프 지방의 카레보에서 태어났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6세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9세에 이미 존 필드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부친의 권유로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음악과 잠시 멀어지게 됩니다.
무소르그스키가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856년 프레오브라젠스키 근위대에 근무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그는 작곡가 알렉산더 다르고미시스키를 만나고, 비평가 스타소프, 작곡가 큐이 등과도 인연을 맺으면서 음악계 인맥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1857년 발라키레프를 만나 작곡 지도를 받으면서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토속적 색채를 음악에 반영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림스키 코르샤코프와도 친분을 맺으며 훗날 "러시아 5인조"로 불리는 그룹이 형성됩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861년 크림전쟁의 패배로 농노제가 폐지되면서 대지주였던 가문이 몰락했고, 1865년 어머니의 사망은 그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위기 속에서도 그는 「민둥산의 하룻밤」, 80여 곡의 가곡,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했습니다. 그리고 1873년 절친한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잠긴 무소르그스키는 1874년 하르트만의 추모 전시회를 관람한 후 그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6월 2일부터 20일까지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으며, 비평가 스타소프에게 헌정되었습니다.

러시아 5인조

러시아 5인조는 발라키레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 코르샤코프, 큐이로 구성된 작곡가 그룹입니다. 스타소프는 이들을 '거대한 소수, 힘 센 작은 그룹'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서구 유럽의 전통적인 음악 형식에서 벗어나 러시아 고유의 민요, 역사, 종교, 민속을 음악의 기본 요소로 삼아 사실주의와 민족주의를 통합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자 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독창적인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유모로부터 러시아 민요를 접했고, 1858년 모스크바 여행에서 본 유서 깊은 건물과 유물들은 그에게 러시아 전통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발라키레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생각 변화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전래동화 속 인물들이나 동시대 러시아 사람들을 피아노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는데, 이는 그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무소르그스키의 민족주의 음악극의 정점이었습니다. 푸쉬킨의 희곡을 바탕으로 6년간의 작업 끝에 1874년 완성된 이 작품은 농민 보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진정한 민족주의 음악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류계급에서는 '예술적 치욕'이라고 헐뜯었고, 제실 극장위원회의 거부로 상연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었던 큐이마저 악평을 서슴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5인조의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고 직장에서도 해고되는 등 어두운 말년을 보내다 1881년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드뷔시를 비롯한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독창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프롬나드

「전람회의 그림」의 가장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프롬나드(Promenade)'라는 간주곡이 작품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입니다. 프롬나드는 전시회를 관람하며 그림 사이를 걸어 다니는 관람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곡 전체에 걸쳐 7번 등장하며 다양한 성격으로 변주됩니다. 처음 네 번은 제목 없이 등장하고, 다섯 번째는 '프롬나드'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여섯 번째는 「카타콤베」 안의 '죽음의 말로 죽은 자들에게 하는 대화'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는 「키에프의 대문」 안에서 나타납니다.
10개의 표제가 붙은 곡들은 각각 하르트만의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난쟁이」는 기괴한 모습의 난쟁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옛 성」은 동화 속 영웅에 대한 꿈과 현실의 괴리를, 「튀일리 궁전의 정원」은 아이들의 거친 놀이를, 「우마차」는 하층 계급의 고된 노동을, 「달걀 껍질이 붙은 병아리의 춤」은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사무엘 골든베르크와 슈밀레」는 사회적 편견을 표현합니다. 후반부로 넘어가는 가장 긴 프롬나드를 기점으로 「리모주의 시장」은 성인 시기의 혼란한 실제 생활을, 「카타콤베」는 철학적 고민을, 「닭발위의 오두막집-바바야가」는 시간에 대한 공포를, 마지막 「키에프의 대문」은 이루지 못한 이상과 꿈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조엘 쉐벨로프가 제시한 것으로, 전체 작품을 '하르트만의 생애로 비추어 본 인생'이라는 틀에서 이해합니다. 전반부는 유년시절의 두려움, 용기, 놀이, 고통, 성, 편견을 다루고, 후반부는 실제 생활의 혼란, 철학적 고민, 시간의 공포, 이루지 못한 이상으로 구성됩니다. 무소르그스키는 단순히 그림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하르트만의 그림들을 음악의 밑그림으로 사용하여 인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표현한 것입니다. 투박하고 거친 화성, 정제되지 않은 리듬은 오히려 그림의 질감과 인간적 감정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며, 화려함보다 솔직함이 앞서는 이 음악은 러시아적 정서와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진정성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가 살아있을 때 단 한 번도 공개 연주되지 못했고 출판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망한 5년 후인 1886년 림스키 코르샤코프에 의해 출판되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상당한 오류와 변형이 발생했습니다. 원곡에 가까운 악보는 1931년에야 출판되었고, 무소르그스키의 육필 원곡은 1975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피아노곡뿐 아니라 관현악곡으로도 널리 편곡되었는데, 특히 1922년 모리스 라벨이 편곡한 버전은 세르게이 쿠제비츠키의 위촉으로 제작되어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이 시각예술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단순한 묘사를 넘어 인생의 보편적 여정을 담아낸 철학적 작품입니다.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독창성과 무소르그스키의 진정성이 응축된 이 걸작은 친구에 대한 깊은 애도이자, 짧은 인생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Classic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