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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페라의 정체성 (조지 거쉬인, 포기와 베스, 재즈 융합)

by 진헤 2026. 2. 11.

 

미국건물

20세기 미국 음악사에서 조지 거슈윈은 유럽 중심의 오페라 전통을 미국적 언어로 재해석한 선구자입니다. 그는 재즈, 블루스, 흑인 영가 같은 미국 고유의 음악 요소들을 클래식 오페라 형식에 통합하며, 고급 예술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특히 「Porgy and Bess」는 1930년대 미국 사회의 현실과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오페라가 시대의 목소리를 담는 예술 형식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조지 거쉬인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음악 경력은 틴팬앨리(Tin Pan Alley)에서 song plugger로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 그는 대중음악 산업의 실용적 감각과 다양한 작곡 스타일을 체득했습니다. 1919년 발표한 「Swanee」는 단 1년 만에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형 아이라 거슈윈(Ira Gershwin)과의 협업을 통해 「Lady, Be Good!」, 「Oh, Kay!」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대중적 감수성과 고전적 형식을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거슈윈의 진정한 전환점은 1924년 「Rhapsody in Blue」의 초연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뉴욕 에올리안 홀(Aeolian Hall)에서 개최된 'An Experiment in Modern Music' 콘서트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클래식 협주곡 형식에 재즈 리듬과 블루스 어법을 통합하여 독자적인 미국식 협주곡 양식을 제시했습니다. 도입부의 클라리넷 글리산도는 곡 전체의 재즈적 성격과 즉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5음 음계와 블루스 스케일을 기반으로 한 선율은 도시적 현대성과 민속적 감수성을 동시에 반영했습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이를 "재즈의 정신을 진지한 예술 형식으로 승화시킨 첫 번째 기념비적 시도"라 평가했고,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는 "진정한 미국 음악의 시작"이라 말했습니다.
이후 거슈윈은 「Piano Concerto in F」(1925), 「An American in Paris」(1928), 「Cuban Overture」(1932) 등을 통해 미국 민속음악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쿠바의 음악 요소까지 흡수하며 다원적 음악 양식(pluralistic musical styles)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Cuban Overture」에서는 바탕고(bongos), 마라카스(maracas), 클라베스(claves), 과로(guiro) 같은 쿠바 전통 타악기를 대규모 관현악 편성에 통합하여 범아메리카주의(Pan-Americanism)적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거슈윈의 이러한 음악적 실험은 유럽 중심의 클래식 전통에서 벗어나 미국만의 음악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20세기 초 미국 작곡가들의 열망을 대변했으며, 그는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음을 작품을 통해 입증한 첫 번째 작곡가"로 평가받습니다.

포기와 베스

포기와 베스는 미국 작가 듀보즈 헤이워드(DuBose Heyward)의 소설 『Porgy』(1925)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 소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주 찰스턴(Charleston)의 흑인 공동체를 배경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헤이워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흑인 주인공을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뉴 니그로(New Negro)' 정신을 반영했습니다. 거슈윈은 1926년 이 소설을 읽고 미국 남부 흑인 문화와 민족 음악적 특성을 반영하기에 적합한 소재라 판단했고, 1934년부터 본격적인 작곡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35년 초연된 포기와 베스는 미국 오페라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거슈윈은 극의 사실성을 위해 연기자 전원을 흑인으로 캐스팅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당시 상황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930년대 미국은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여파로 사회 취약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제도화된 인종차별 속에서 이중 고통을 겪었습니다.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으로 알려진 차별적 법률들은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원칙 아래 공공시설, 교육, 교통, 주거, 의료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흑백을 분리시켰으며, 실제로 흑인에게 제공된 자원과 서비스는 극도로 열악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Porgy and Bess」의 등장인물들은 당시 흑인 사회의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반신 장애를 가진 거지 포기(Porgy)는 공동체의 희망을 상징하며, 그가 베스를 사랑하며 보호하려는 모습은 대공황 시기 인간적 희망과 사랑을 대변합니다. 마약과 폭력에 노출된 베스(Bess)는 상처받은 여성이자 갈등의 중심으로, 당시 흑인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성적 대상화를 반영합니다. 폭력적인 항만 하역부 크라운(Crown)은 남부 노동자 계층의 좌절과 분노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현상을 보여주며, 마약 밀매업자 스포팅 라이프(Sporting Life)는 도시로 이주한 흑인들이 직면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상징합니다. 젊은 어머니 클라라(Clara)가 부르는 자장가 「Summertime」은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삶의 희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노래입니다.
오페라의 서사는 로빈스(Robbins)가 도박판에서 크라운에게 살해당하면서 시작됩니다. 크라운이 도주하고 베스가 방치되자, 포기는 그녀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돌아온 크라운이 베스를 되찾으려 하자, 포기는 베스를 지키기 위해 크라운을 죽이게 됩니다. 체포된 포기가 석방된 후, 베스가 스포팅 라이프의 유혹에 빠져 뉴욕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는 대이주 시대(great migration) 남부 흑인들이 억압적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입니다.

재즈 융합

「Porgy and Bess」의 가장 큰 음악적 성취는 흑인 민속음악과 클래식 오페라 형식의 유기적 융합입니다. 거슈윈은 아리아, 레치타티보, 앙상블, 합창, 오케스트라 전주곡과 간주곡 등 유럽 오페라의 전형적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재즈 리듬, 블루스 선율, 흑인 영가(Negro spiritual), 워크송(work song)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전통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혼합을 넘어 문화 간 상호작용을 내포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고전 음악 언어를 넘어선 다양한 비서구적 음악 요소들을 결합한 것입니다.
거슈윈은 1934년 여름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흑인 공동체에서 직접 시간을 보내며 흑인들의 일상 음악, 교회 음악, 노동요를 체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작품 전반에 걸쳐 진정성 있는 음악적 재현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Summertime」, 「I Got Plenty o' Nuttin'」, 「It Ain't Necessarily So」 같은 넘버들은 블루스 스케일과 5음 음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리아의 구조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합창 장면에서는 흑인 영가의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 전통이 적극 활용되어 공동체의 집단적 정서를 표현했으며, 폭풍 장면에서는 불협화음과 복합 리듬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실험은 20세기 미국 오페라의 현실주의(realism) 경향과도 맞물립니다. 미국 오페라는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현실과 삶을 반영하는 베리스모(Verismo)의 영향을 받았고, 자국의 역사, 계층 간 갈등, 인종 문제, 일상적 고통 등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Porgy and Bess」는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위치한 작품으로, "미국식 현실주의 오페라(American realist opera)의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초연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뮤지컬과 오페라의 경계에 있다는 논쟁을 제기했으나, 결국 음악적 완성도와 진지한 주제로 인해 '미국 국민 오페라'로 재평가되었습니다.
흑인 성악가들이 주연을 맡은 대형 오페라가 1930년대 미국 주류 무대에 오른 것은 단순한 예술적 성취를 넘어 인종적 불평등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초연 당시 포기 역을 맡은 토드 던컨(Todd Duncan)과 베스 역의 앤 브라운(Anne Brown)은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했으며, 이들의 활동은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하던 인종주의 제약 속에서도 흑인 예술가들이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이후 미국 오페라계에서 흑인 중심 이야기가 편입되는 중요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거슈윈의 음악은 유럽 고전 전통의 형식미와 미국 민속음악의 생동감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오페라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동시대 사회를 투영하는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가적 정체성과 대중의 감정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예술화하는 과정"으로 평가되며, 20세기 미국 음악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아메리칸 사운드'의 원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거슈윈은 1937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오페라의 이상형이자 문화적 토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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