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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음악과 바르톡 (19세기, 헝가리 민속 음악, 바르톡)

by 진헤 2026. 2. 5.

프랑스건물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태동한 민족주의 음악은 단순히 애국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음악 언어로 구축하는 문화 운동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민요, 민속 춤곡, 특이한 민족적 선율은 음악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바르톡과 같은 작곡가들이 민속 음악을 현대적 기법과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 양식을 창출하였습니다.

19세기 민족주의 음악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1789)과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의 정복 전쟁은 유럽 전역에 극심한 정치·사회적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계몽주의(Enlightenment)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자유와 평등 이념은 시민 계급에게 전파되었으며, 이는 각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족의 독립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1820년대 독일 지역의 빈체제 저항 운동을 시작으로 민족주의 음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86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민족주의 음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ütz, 1821)>는 독일 민족적 소재와 징슈필(Singspiel)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민족주의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독일 신화를 소재로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74)> 시리즈를 작곡하며 민족주의 음악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글린카(Mikhail Glinka, 1804-1857)가 오페라 <이반 수사닌(Ivan Susanin, 1836)>으로 러시아 민속 선율과 리듬을 활용한 국민 오페라의 전통을 확립했으며, 러시아 5인조(The Five)는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1839-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1869)>와 같은 대표작을 통해 20세기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보헤미아의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는 폴카(Polka)와 푸리안트(Furiant)를 바탕으로 <팔려간 신부(Prodaná Nevěsta, 1866)>를 작곡했고, 폴란드의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은 마주르카(Mazurka)와 폴로네이즈(Polonaise) 같은 민속 춤곡 리듬을 피아노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이처럼 19세기 민족주의 음악은 각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적 특색을 음악 양식으로 구현한 역사적 성과였습니다.

헝가리 민속 음악

20세기 초 축음기와 녹음기의 발전은 민속 음악 연구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작곡가들은 직접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은 1904년 헝가리 민요를 우연히 접한 후, 1905년부터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와 함께 헝가리와 주변 동유럽을 여행하며 수많은 헝가리 민속 음악을 발굴했습니다. 1906년 12월에는 첫 번째 민요 편곡집 <20개의 헝가리 민요>를 출판하였고, 민요 수집은 1940년 유럽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바르톡의 연구는 단순한 자료 수집을 넘어 민속 음악의 본질을 파악하는 학문적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5음 음계(Pentatonic Scale), 헝가리안 음계(Hungarian Scale), 불가리안 리듬(Bulgarian Rhythm), 헝가리안 리듬(Hungarian Rhythm) 등 헝가리 민속 음악의 구조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1901년 야나체크(Leoš Janáček, 1854-1928)가 '모라비아 지방의 민요'를 출판하며 모라비아 민요의 언어적 리듬과 불규칙적 악구를 연구한 것처럼, 바르톡 역시 민속 음악의 고유한 음악적 언어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바르톨의 제2기(1908-1914)는 민속 음악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14개의 바가텔(14 Bagatelles, Sz. 38, 1908)>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민요를 직접 사용한 작품으로 부조니(Ferruccio Busoni, 1866-1924)로부터 '진정한 새로운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For Children, Sz. 42, 1909)>는 바르톡의 민요 연구가 일관성 있게 체계화된 스타일로 나타난 최초의 작품이며, <알레그로 바르바로(Allegro Barbaro, Sz. 49, 1911)>는 민속적 요소가 완전히 동화되면서 원시주의(Primitivism)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바르톡은 민속 음악을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대 음악의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하는 방법론을 확립했습니다.

바르톡

바르톡에게 민족주의는 정체성을 과시하기 위한 구호가 아니라, 음악 언어를 확장하기 위한 토대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민속 선율을 장식처럼 사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거칠고 날것 같은 리듬과 음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감각을 불러냅니다. 동시에 이 요소들은 치밀한 구조 속에 배치되어 민족성과 현대성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합니다.

바르톡의 제4기(1926-1934)는 그의 기법이 완성되고 음악적으로 성숙되는 시기입니다. 그는 베토벤과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음악을 연구하며 아치형 형식(Arch Form), 황금 분할 원리, 중심축 시스템(Axis System)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는 민속 춤곡의 선율과 리듬에 복조성(Polytonality), 황금 분할, 대위법적 특징을 결합한 교육적 작품입니다. <피아노 소나타(Piano Sonata, Sz. 80, 1926)>와 <피아노 협주곡 제1번(Piano Concerto No. 1, Sz. 83, 1926)>은 피아노의 타악기적 연주 기법을 통해 원시주의적 특징을 드러냅니다.

실내악 분야에서 바르톡은 <현악 4중주 제3번(String Quartet No. 3, Sz. 85, 1927)>과 <현악 4중주 제4번(String Quartet No. 4, Sz. 91, 1928)>에서 글리산도(Glissando), 바르톡 피치카토, 꼴 레뇨(Col Legno), 술 타스토(Sul Tasto),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 등 다양한 연주 기법을 총망라하여 새로운 음색을 추구했습니다. 제5기(1934-1940)의 <현과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Music for String, Percussion and Celesta, Sz. 106, 1936)>은 민속 음악, 바르톡의 작곡 기법, 피아노의 타악기적 특성, 푸가적 요소가 결합되어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제6기(1940-1945) 미국 시기에는 고전적 형식과 기법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음악을 추구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대위법적 짜임새와 주제 발전기법이 단순해지고 조성과 화성이 뚜렷해졌지만, 집단음(Ton Cluster) 등을 통해 민속 음악적 요소는 꾸준히 표현되었습니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Orchestra)>, <피아노 협주곡 제3번(Piano Concerto No. 3)>은 신고전주의와 민족주의 요소가 융합된 대규모 관현악 작품입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Sonata for Solo Violin)>는 샤콘느(Chaconne)-푸가(Fuga)-멜로디아(Melodia)-프레스토(Presto) 구성으로 바흐의 영향과 바르톡 특유의 다성적 어법을 보여줍니다.

바르톡의 음악은 복리듬(Polyrhythm), 복조성, 다중선법(Polymodality)을 민속 음악 요소와 결합하여 민속적이면서도 불협화음적이고 현대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바르톡 피치카토와 집단음 기법은 현대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기법 발전에 기여했으며, 중심축 체계와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ries)을 이용한 황금 분할 기법은 그의 독자적인 음악 이론입니다. 이처럼 바르톡은 민족 음악의 원초적 에너지와 현대 음악의 정교한 구조를 융합하여, 민족주의 음악이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닌 미래를 향한 창조적 실험임을 입증했습니다.

19세기 민족주의 음악이 독립과 통일의 열망 속에서 애국적 목적으로 탄생했다면, 20세기 바르톡의 음악은 민속 음악을 음악적 요소로 승화시켜 개성적 양식을 창출한 예술적 성취입니다. 민족성과 현대성의 공존을 통해 바르톡은 민족주의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작곡가와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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