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사에서 1600년부터 1750년까지를 바로크 시대라 부릅니다. 이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 음악에서 벗어나 가사의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 혁명적 전환기였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카메라타 모임에서 시작된 모노디 양식과 바소콘티누오의 탄생은 오늘날 우리가 듣는 모든 솔로 음악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바로크 초기 음악 양식의 탄생 비밀을 통해 감정을 음악에 담는 방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모노디 양식의 탄생
모노디 양식은 솔로 선율에 반주를 붙인 음악 형태로, 바로크 시대 초기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했습니다. 1573년부터 1587년 사이 조반니 데 바르디가 열었던 카메라타라는 예술 모임에서 갈릴레이, 줄리오 카치니, 야코포 페리 등의 인물들이 고대 그리스 음악과 비극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음악 양식을 창조하려 했습니다.
지롤라모 메이라는 학자는 그리스 연극을 편집하면서 비극의 대사 전체가 노래로 불렸을 것이며, 그리스 음악은 단선율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카메라타 멤버들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다성 음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빈첸초 갈릴레이는 "여러 성부가 각기 다른 선율과 가사를 동시에 부르면 혼란이 생기고 가사의 정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마드리갈과 모테트는 아름다운 다성 음악이었지만, 5성부 또는 그 이상의 성부가 모방 기법으로 돌림노래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가사 전달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한 성부가 첫 번째 가사를 부를 때 다른 성부는 두 번째 가사를 부르는 식으로 가사가 겹쳐서, 청중은 정확한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슬픔을 표현하는 가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가사가 동시에 불리면 감정 전달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노디 양식이 등장했습니다. 모노디는 단순한 단선율 음악인 모노포니가 아니라, 하나의 선율에 화성적 반주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는 오늘날 가곡이나 대중음악의 기본 구조와 동일합니다. 솔로 가수가 선율을 노래하고 악기가 코드 반주를 하는 형식이 바로 모노디 양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줄리오 카치니는 1602년에 "새로운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솔로 노래 모음집을 출판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유절 형식의 가사로 된 노래를 '아리아'라고 불렀고, 통절 형식의 가사로 된 노래를 '마드리갈'이라고 구분했습니다. 이때의 아리아는 오페라 아리아와는 다른 개념으로, 단순히 1절 2절이 반복되는 형식적 특징을 가진 노래를 의미했습니다.
모노디 양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음악보다 가사가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음악의 아름다움이 최우선이었고 가사는 그에 맞춰 붙여졌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가사가 먼저 주어지고 그 정서에 맞춰 음악이 작곡되었습니다. 시인이 표현한 감정을 작곡가가 해석하여 음악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가사와 음악이 완전히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긴장과 이완의 폭을 극대화할 수 있어 청중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바로크 초기 솔로 마드리갈을 올바르게 연주하려면 가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정서를 충분히 감정 이입하여 표현해야 합니다. 가수는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의 의미와 감정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해석자이자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바소콘티누오의 혁신과 반주의 역할 변화
바소콘티누오는 모노디 양식을 구현하기 위해 탄생한 반주 기법입니다. 지속 저음, 통주저음, 숫자 저음, 피겨드 베이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기법은 베이스 라인과 숫자만으로 화음을 표시하는 간결한 방식입니다. 악보에는 최하단 베이스 선율과 그 위에 적힌 숫자만 표기되며, 연주자는 이 숫자를 보고 화음을 만들어 연주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이스 음이 '도'이고 아무 숫자도 없으면 기본 위치 화음인 도-미-솔을 연주합니다. 숫자 6이 적혀 있으면 1전위 화음을 의미하므로 도에서 여섯 번째 음인 '라'를 포함한 화음을 만듭니다. 5와 3은 기본적으로 생략되므로 별도 표기가 없으면 기본 위치로 간주됩니다. 이렇게 숫자만으로 화음을 지시하는 방식은 악보를 극도로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소콘티누오가 탄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악가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사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가수는 감정에 따라 템포를 자유롭게 조절하고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반주부가 화려하고 복잡하면 가수의 노래에 방해가 되고, 반주자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가사 전달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소콘티누오는 불필요한 장식음이나 복잡한 선율을 배제하고, 가수를 받쳐주는 최소한의 화성적 지지만 제공했습니다. 반주자의 역할은 가수를 따라가며 보조하는 것이었고, 가수가 템포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면 반주자도 그에 맞춰야 했습니다. 반주는 거의 배경에 불과했으며, 가수가 절대적인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소콘티누오를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들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같은 건반 악기는 화음을 쉽게 연주할 수 있었고, 류트나 기타 같은 현악기도 코드를 보면서 반주할 수 있었습니다. 비올이나 첼로 같은 저음 현악기는 베이스 라인을 담당하며 전체 화성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바소콘티누오의 원리는 현대 대중음악의 코드 악보와 동일합니다. 대중음악 악보에서도 멜로디 선율 위에 G, D, Em 같은 코드 기호만 표기하고, 반주자는 그 코드를 보고 자유롭게 반주를 만들어냅니다. 베이스 라인과 화음 표시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은 400년 전 바로크 시대에 이미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사용자의 지적처럼, 반주자는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바소 컨티누오의 본질은 간결함과 절제에 있으며, 이를 통해 가수가 자신의 예술적 해석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반주자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거나 음악을 주도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크 초기 음악 정신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가사 전달
바로크 시대 초기 음악의 핵심은 가사의 정서를 음악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작곡가들은 가사를 먼저 깊이 분석하고, 각 단어와 문장이 담고 있는 감정을 음악적 요소로 번역했습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가사에는 하행하는 선율과 단조 화성을, 기쁨을 표현하는 가사에는 상행하는 선율과 장조 화성을 사용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음악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합니다. 르네상스 음악은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에 누가 들어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었지만, 특정한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마드리갈처럼 5성부가 모방 기법으로 진행되는 음악은 소프라노에서 시작된 선율이 알토, 테너, 베이스로 차례로 이동하며 정교한 음향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을 들으면 깨끗하고 성스러운 느낌은 받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감정이나 이야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카치니의 "아마릴리"같은 모노디 양식의 음악은 사랑의 그리움과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솔로 선율이 가사의 의미를 따라 움직이고, 가수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실어 노래할 수 있습니다. 청중은 이탈리아어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음악에 담긴 감정의 80퍼센트 이상을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사와 음악이 일치하기 때문에, 음악만 들어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충분히 전달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적 측면에서 더욱 발전된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 단순히 청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로 진화한 것입니다. 시인의 시와 작곡가의 음악, 그리고 가수의 해석이 하나로 결합되어 완전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장식음의 사용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기교를 과시하거나 음악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장식음을 사용했지만, 바로크 초기에는 오직 가사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장식음을 사용했습니다. 불필요한 기교는 철저히 배제되고, 감정 표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식만 남았습니다.
긴장과 이완의 폭이 커진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르네상스 음악의 긴장과 이완이 작은 폭으로 완만하게 진행되었다면, 바로크 음악은 가사의 극적인 내용을 따라 긴장과 이완의 폭을 극대화했습니다. 사람들은 감정적 기복이 큰 음악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로크 양식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