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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페달기법 (페달역사, 페달링, 연주법)

by 진헤 2026. 4. 28.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피아노 전공자라면 필수로 공부하게 될 레파토리이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그의 음악을 표현하기 쉽지 않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기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악보만 보아도 굉장히 압도적인데요, 처음에는 3악장으로 설계되었으나 중간 악장이 전체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분리되었고, 그 결과 두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소나타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도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피아노 한 대에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끌어내려는 베토벤의 욕망이 느껴져서, 무섭기도 하고 또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소나타의 제목은 베토벤의 최대 후원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되었기 때문에 붙었습니다. 발트슈타인 백작은 단순한 재정 지원자가 아니었습니다. 1792년 베토벤이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향할 때, 그의 기념 노트에 "모차르트의 정신을 하이든의 손에서 받아들이라"라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그 한 문장이 청년 베토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울컥합니다.

페달의 역사

베토벤이 페달을 이렇게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려면 페달의 역사부터 알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 이 부분을 공부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밟는 그 페달이 생각보다 훨씬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초기 피아노에는 지금 같은 발 페달이 없었고, 댐퍼(damper)를 손으로 조작하는 핸드스톱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댐퍼란 피아노 현의 진동을 멈추거나 허용하는 장치로, 지금으로 치면 페달 기능 전체를 손으로 하던 셈입니다. 연주 중에 손을 건반에서 떼야 하니 연주자들이 불편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겠죠.

 

이후 1765년경 독일에서 니 레버(Knee lever)가 등장합니다. 니 레버란 무릎으로 레버를 밀어 올려 댐퍼를 조작하는 장치로, 손은 자유롭지만 발꿈치를 들고 무릎을 써야 해서 연주 자세가 불안정했습니다. 그리고 1777년 아담 베이어가 발판 형태의 페달을 소개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발 페달의 원형이 등장했습니다.

 

베토벤이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작곡할 당시 사용한 악기는 에라르(Erard)제 피아노였습니다. 이 피아노에는 발로 밟는 조작이 간단한 페달이 장착되어 있었고, 베토벤이 이 악기를 사용하면서 페달 사용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는 것이 제 해석이기도 합니다. 피아노 제작 기술의 발전이 베토벤의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소나타라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베토벤의 페달링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전체에 걸쳐 페달 표시를 약 800곳에 남겼습니다. 그중 댐퍼 페달(damper pedal)이 98%를 차지하고, 나머지 2%가 우나 코다(una corda) 페달입니다. 댐퍼 페달이란 건반에서 손을 떼도 음이 계속 울리도록 현의 진동을 유지시키는 페달이고, 우나 코다 페달이란 건반과 해머 전체를 옆으로 이동시켜 하나의 현만 타격하게 함으로써 음량과 음색을 동시에 변화시키는 페달입니다.

직접 악보를 보며 연주해 보니, 베토벤이 페달 표시를 남긴 곳과 남기지 않은 곳 사이에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가 페달을 사용한 주요 목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베이스음을 지속시켜 화성적 뒷받침을 제공하기 위해
  • 레가토(legato) 효과, 즉 음과 음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 화성과 화성 사이의 음향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드는 하모닉 블러(harmonic blur) 효과를 위해
  • 강약의 극단적인 대비, 특히 ff에서 pp로의 급격한 전환을 위해

특히 발트슈타인 소나타 마지막 악장 론도에서 등장하는 긴 페달 지시는 지금도 논란입니다. 슈나벨 같은 피아니스트는 1~4마디를 하나의 페달로 유지해야 베토벤의 의도인 C음의 울림이 G음까지 이어지는 효과가 살아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음대 다니던 시절 전공실기 선생님께서 항상 베토벤을 공부할 땐 슈나벨 출판사를 참고하라고 거듭 말씀 하셨었는데요. 학교 도서관에서 슈나벨판을 빌려 참고해보니 그의 해석이 꽤나 설득력있었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발트슈타인 소나타 1악장 내가 직접 그린 페달링

 

연주법

 

문제는 베토벤이 쓴 악기와 지금 우리가 앉는 그랜드 피아노 사이에 200년 이상의 기술적 간극이 있다는 점입니다.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는 현대 피아노에 비해 울림이 짧고 음향이 작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성이 바뀌어도 페달을 길게 유지하면 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오히려 풍성한 음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반면 현대 피아노는 울림이 훨씬 길고 음향이 크기 때문에, 베토벤의 원전 페달링을 그대로 따르면  그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화성이 탁하게 뭉개지고 경우가 생깁니다.

 

제가 직접 베토벤의 지시에 따라 페달을 밟아보았는데요. 발트슈타인 소나타 론도 코다 부분의 403마디부터 411마디까지 그가 지시한 대로 하나의 페달을 유지하면 현대 피아노에서는 상당히 지저분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다고 페달을 아예 자주 바꿔버리면 이 악장 특유의 신비로운 울림이 사라집니다. 결국 어느 쪽도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밑의 악보는 저와 선생님과 함께 고민하면서 직접 그린 페달링입니다. 

 

발트슈타인 소나타 1악장 내가 직접 그린 페달기법

 

 

베토벤이 1800년부터 청력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 작품이 만들어진 1804년에는 이미 청력이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는 점도 꼭 알아야 합니다. 베토벤이 의도적으로 화성의 흐림을 설계한 것인지, 아니면 청력의 한계로 인해 음향의 혼탁함을 인식하지 못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나 코다 페달 활용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1악장 제1주제의 pp 구간이나 재현부 시작 부분에서 우나 코다 페달을 함께 쓰면 음량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음색 자체가 달라지는 효과가 납니다. 베토벤은 이 페달이 단순히 소리를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음색의 팔레트를 바꾸는 수단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페달링은 정답이 하나로 정해진 문제가 아닙니다. 베토벤이 원전 악보에 남긴 지시를 출발점으로 삼되, 지금 연주자가 앉은 악기의 특성과 연주 공간의 울림을 감안해 판단해야 합니다. 저 역시 완벽 방음이 되어있는 연습실 피아노와, 실제 공연장에 있는  울림이 강한 연주용 피아노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리허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이 곡도 페달의 울림을 귀로 듣고 조율하는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곡입니다. 베토벤이 이 소나타를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의 한계를 밀어붙였듯, 연주자도 자신의 귀와 감각으로 그 경계를 끝없이 탐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 노영해 역, 「페달링의 원리」, 음악춘추사, 2005

  • 백기풍 외 2인, 「베토벤 32곡 피아노소나타 전곡분석과 연주법」, 작은우리, 1993
  • 김경임 역, 「고전파 피아노 음악의 연주」,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2
  • 조수철,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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