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피아노 랩소디 Op.79 No.2, g단조, 4/4박자, 소나타형식. 이곡을 연습하다보면 구조는 고전파인데 감정은 폭풍처럼 낭만파고, 리듬은 셋잇단음표가 쉬지 않고 흘러가면서도 성부마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오늘은 이 브람스 랩소디의 악곡 구조를 분석하고, 실제로 연습하면서 부딪혔던 연주기법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소나타형식으로 읽는 악곡분석: 모티브가 전부를 지배한다
이 곡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로
이루어진 소나타형식(Sonata Form)입니다. 소나타형식이란 하나의 악장 안에서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며, 다시 원래 조성으로 회귀하는 고전적 구성 원리를 말합니다. 브람스는 이 틀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내부에서는 낭만파적 감정을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 그 결절점이 바로 모티브 a와 b입니다.
제1주제(m.1~8)를 들여다보면, 상성부에 모티브 a(반음 상행)와 모티브 b가 겹쳐져 있습니다. 이 두 모티브는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곡 전체를 관통하는 순환 주제(Cyclic Theme)로 기능합니다. 순환 주제란 한 곡 안에서 같은 모티브가 변형, 확대, 역행의 형태로 반복 등장하며 음악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기법입니다. 제가 이 곡을 처음 분석했을 때 가장 놀랐던 부분이 여기였는데, m.1에서 나온 단 두 개의 작은 덩어리가 발전부 53마디를 거의 혼자 끌고 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허위종지(Deceptive Cadence)도 초반부터 등장합니다. 허위종지란 Ⅴ도(딸림화음)에서 Ⅰ도(으뜸화음)로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어기고 Ⅵ도 등으로 진행하는 화성 기법으로, 조성의 안정감을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첫 박부터 Ⅴ-Ⅵ 허위종지가 나오고, 이후 여덟 마디 동안 F-C-G-A-E장조를 차례로 암시할 뿐 g단조는 m.11~13에서야 잠깐 얼굴을 내밉니다. 처음 이 대목을 분석했을 때 "이게 정말 g단조 곡 맞나?" 싶었습니다.
제2주제(m.14~20)는 제1주제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집니다. 넓은 음역의 분산화음이 반주부에 펼쳐지고, 선율선은 우수를 담은 채 유연하게 흐릅니다. 여기서 증6화음(Augmented Sixth Chord)이 세 번(m.14, 15, 19) 등장하는데, 증6화음이란 으뜸음 아래 장6도 음정이 반음씩 바깥으로 확대되어 강렬한 색채감과 긴장을 만드는 화음입니다. 이 화음이 반복될 때마다 음색이 살짝 달라지는 느낌을 세심하게 살리는 것이 연주의 관건입니다.
발전부에서는 이명동음 전조(Enharmonic Modulation)라는 기법이 사용됩니다. 이명동음 전조란 같은 음을 다른 조성에서 다른 이름으로 읽어 자연스럽게 전조하는 방법으로, m.40~41에서 Bb장조의 Ab음을 g#단조의 G#음으로 해석하며 g#단조로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이 전조가 얼마나 유연한지, 처음 들을 때는 전조됐는지도 모르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의식하고 듣기 시작하면 브람스의 화성 설계가 얼마나 치밀한지가 비로소 느껴집니다.
발전부의 핵심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1부분(m.33~53): 제1주제 모티브 a, b의 확대와 자리바꿈, 페달 포인트 활용
- 제2부분(m.54~64): 제2주제 모티브 c와 점음표 음형 d의 확대, 영웅적 에너지
- 제3부분(m.65~85): 우나 코다(una corda) 사용, ppp의 몽환적 음색, 드라마틱한 대비
재현부(m.86-123)는 소나타 원리에 충실하게 제2주제가 d단조에서 원조인 g단조로 돌아옵니다. m.120에서 가장 깊은 저음역까지 하행하며 3도를 수반한 으뜸화음으로 스며든 뒤, m.122-123의 완전 정격종지(Ⅴ-Ⅰ)로 막을 내립니다. 완전 정격종지란 딸림화음에서 으뜸화음으로 해결되어 조성적 안정감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종지 형식입니다. 그 순간의 해결감은 53마디를 달려온 발전부의 긴장을 한 번에 풀어줍니다.
연주기법: 성부 균형과 페달링이 이 곡의 핵심이다
이 곡을 연습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벽에 부딪힌 문제는 성부 균형이었습니다. 브람스 피아노 음악은 선율이 중성부에 내재하거나 여러 프레이즈가 동시에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무심코 치면 어느 선율이 주(主)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1주제에서 오른손은 셋잇단음표 중성부를 가장 작게, 베이스 옥타브는 충분히 울리게, 위 선율은 날아오르듯 힘차게 내야 하는데, 손가락 다섯 개가 동시에 세 가지 다른 음량을 내는 것이 처음엔 정말 어렵습니다.
레가토(Legato) 선율에서는 손가락 레가토가 연결 페달보다 먼저 확보되어야 합니다. 레가토란 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 연주하는 방법으로, 페달에만 의존하면 음이 흐려지고 선율의 윤곽이 뭉개집니다. 제가 직접 연습해보니 페달 없이 손가락 레가토만으로 프레이즈 선을 먼저 완성한 뒤 페달을 입히는 순서를 지켰을 때 투명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페달링은 이 곡에서 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m.116~122 구간은 6도를 수반한 포르티시모(fortissimo) 으뜸화음이 자연스럽게 감소해야 하는데, 긴 페달을 사용하면 저음역 화음이 탁하게 섞입니다. 여기서는 하프 페달(Half Pedal)이 불가결합니다. 하프 페달이란 댐퍼 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고 절반 정도만 눌러 음의 울림을 조절하는 기법으로, 귀로 소리를 들으며 페달 깊이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페달은 그냥 밟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곡은 페달링 자체가 하나의 기술 과목이었습니다.
발전부 제3부분(m.65~)에서는 우나 코다(Una Corda)를 사용합니다. 우나 코다란 그랜드 피아노의 소프트 페달로, 해머가 현 전체가 아닌 일부만 타격하게 하여 음량을 줄이고 음색 자체를 몽롱하게 바꾸는 장치입니다. ppp로 시작해 m.79의 포르티시모까지 끌어올리는 이 드라마틱한 구간은, 우나 코다를 언제 끊느냐에 따라 클라이맥스의 폭발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 경험상 너무 일찍 페달을 풀면 긴장감이 미리 새어버리고, 너무 늦게 풀면 포르티시모가 힘을 못 받습니다. 귀를 믿고 조금씩 조정해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차 리듬(Cross Rhythm)도 중요한 연주 과제입니다. 교차 리듬이란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다른 리듬 단위를 동시에 연주하는 기법으로, 이 곡에서는 2:3 교차 리듬이 m.48, 52 등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기계적으로 박자를 맞추려 하면 오히려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두 리듬의 공통 분모 단위를 메트로놈으로 충분히 느리게 연습한 뒤 템포를 올리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출처: Henle Verlag 편집부, 브람스 피아노 작품 원전판 해설).
브람스 작품 연주에 있어 학술적으로 권위 있는 분석 자료로는 국제악보도서관(IMSLP)에서 제공하는 원전 악보와 학술 자료들이 널리 활용됩니다(출처: IMSLP Petrucci Music Library). 이를 참고하면 악보 읽기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브람스 랩소디 Op.79 No.2는 작은 규모 안에 브람스의 완숙된 작곡기법이 빼곡하게 담긴 곡입니다. 단순히 테크닉을 쌓는다고 풀리는 곡이 아니라, 악곡 구조를 이해하고 작곡가가 의도한 감정의 방향을 먼저 파악한 뒤에 연습해야 실질적인 발전이 생깁니다. 이 곡이 손에 잘 안 잡힌다면, 악보를 피아노 앞에서 떼고 모티브 a와 b가 발전부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먼저 눈으로 추적해 보시길 권합니다. 구조가 보이면, 소리도 달라집니다.
참고: - 서혜영, 「랩소디의 세계 - 브람스의 두 개의 랩소디 Op.79」, 피아노 음악 제197호, 음연, 1998
- 김연이, 「J. Brahms Rhapsody Op.79 No.1, 2의 분석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 서지연, 「J. Brahms Rhapsody Op.79에 관한 분석 고찰」,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 F. Dorian, 「음악 연주사」, 안미자 역, 세광출판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