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작품은 굉장히 내면적이고 깊이있는 화음이 특징적입니다. 전 사실 현대음악은 자신있게 연주할 수 있지만, 브람스의 곡처럼 깊이있는 음악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나 클라리넷 소나타를 반주할 당시에도 그의 내면을 표현해내기 어려웠지만, 함께 연주했던 솔리스트들이 도움을 주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룰 Intermezzo Op.119는 그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만큼 더욱 성숙함이 느껴지며, 오로지 피아노 한대 만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에 고충이 정말 많았는데요. 특히 대학교 다닐 시절 20대 초반 어린나이에 실기곡으로 준비하느라 이해하기 더욱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곡을 직접 연습하며 느꼈던 점과 방향성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작품배경
브람스의 「Intermezzo Op.119」는 1893년 여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입니다. 출판사 Simrock에 넘기기 전에 클라라 슈만에게 먼저 보여줬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 브람스에게 이 곡이 단순한 피아노 소품 이상의 의미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브람스는 스스로 이 작품의 첫 번째 곡을 "슬픔을 달래주는 자장가(lullabies of my pain)"라고 표현했습니다.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매 마디, 매 음표는 리타르단도처럼 울리도록 연주하라, 마치 한 음 한 음이 우수를 빨아들일 것처럼"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본인이 연주 지침을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남긴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 곡에 대한 브람스의 각별한 애착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형식 면에서는 고전주의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화성과 리듬에서는 낭만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진보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성격 소품(character piece)'이란 특정 감정이나 분위기를 담기 위해 작곡된 짧은 기악 소품을 의미합니다. 브람스는 이 양식을 고전주의 틀 위에 얹어 자신만의 독자적인 피아니즘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연은 클라라 슈만의 제자였던 이로나 아이벤 슈츠(I. Eibenschütz, 1873-1967)가 런던 세인트 제임스 연주홀에서 맡았습니다. 브람스 음악의 초연을 클라라의 제자에게 맡겼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클라라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악곡분석
Op.119는 세 개의 인터메쪼와 한 개의 랩소디로 구성됩니다. 각 곡은 ABA' 3부분 형식이라는 큰 틀을 공유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음악적 언어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ABA' 형식이란 주제부(A)가 제시되고 대조적인 중간부(B)를 거쳐 처음 주제가 변형된 형태(A')로 돌아오는 3단 구조를 말합니다.
제1곡 Intermezzo(Adagio)에서 저를 가장 당혹스럽게 했던 부분은 바로 A부분의 모호한 조성입니다. 명확한 베이스음 없이 3도 음정으로 연속 하행하는 동기가 이어지는데, b단조의 종지는 각 프레이즈 끝에서만 등장합니다. 이는 의도적으로 조성을 흐릿하게 유지하는 기법으로, B부분에서 D장조의 명확한 근음이 제시될 때의 안정감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제가 직접 연주해보니, 이 대비를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이 곡에서 가장 감동적인 지점이었습니다.
제2곡 Intermezzo(Andantino un poco agitato)는 e단조로 시작해 E장조를 거쳐 다시 e단조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헤미올라(hemiola)'라는 기법이 눈에 띕니다. 헤미올라란 2박자와 3박자가 교차되면서 박절의 중심이 흔들리는 리듬 기법으로, 브람스가 즐겨 사용한 장치 중 하나입니다. A부분의 초조하고 긴장된 분위기와 B부분의 우아한 왈츠 선율이 대비를 이루는데, 이 전환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이 곡 연주의 핵심 과제입니다.
제3곡 Intermezzo(Grazioso e giocoso)는 Op.119 중 유일하게 가볍고 유쾌한 성격의 곡입니다. B부분에서 잦은 전조가 이어지는데, 다음과 같이 빠르게 조성이 바뀝니다.
- A장조 → f단조 → c단조 → D♭장조 → b♭단조 → f단조 → A♭장조 순으로 이어지다 C장조로 복귀
이 전조들을 치면서 베이스 음을 놓치면 조성 감각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연습할 때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웠습니다.
제4곡 Rhapsodie(Allegro risoluto)는 E♭장조로 시작하는 영웅적인 성격의 곡입니다. 여기서 A-B-C-B-A 대칭 구조가 특징적인데, 이는 '대칭 아치 형식'으로도 불리며 브람스가 만년에 자주 활용한 구조적 장치입니다. 5마디 단위 프레이즈가 반복되는 독특한 리듬감도 이 곡만의 특성입니다.
브람스가 이 네 곡에서 구사한 화성 언어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진보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작곡 이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작품이 20세기 음악의 전조를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연주적용
악보 분석과 실제 연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습니다. 제가 이 곡들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 이론적으로 구조를 아는 것과 그 구조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제1곡에서는 '리타르단도(ritardando)'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리타르단도란 점점 느려지는 것을 의미하는 지시어지만, 브람스는 곡 전체가 리타르단도처럼 들리길 원했다고 편지에서 밝혔습니다. 즉, 빠르기말 없이도 모든 음이 무게를 갖고 흘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걸 너무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곡이 지나치게 처지는 실수를 했는데, 선율이 연결감을 잃지 않는 선에서 각 음에 호흡을 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제2곡에서는 A부분과 B부분의 대비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코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mermann)의 연주를 들어보면, B부분에서 선율을 공중에 띄우듯 가볍게 처리하면서도 왼손 반주가 끊김 없이 받쳐주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선율과 반주의 음량 밸런스를 어떻게 잡느냐가 이 곡의 품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주 시 각 곡에서 특히 주의할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1곡: 프레이즈를 길게 잡아 음이 낱낱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코다(제58마디~)에서 페달을 줄여가며 사라지듯 마무리
- 제2곡: A부분의 16분음표가 뭉치지 않게 균등하게 처리하고, B부분은 레가토로 긴 호흡 유지
- 제3곡: 왼손 도약 시 베이스음 정확히 잡고, 헤미올라 리듬에서 박자 혼동 방지
- 제4곡: C부분(제93마디~)의 장식음과 주선율을 명확히 구분하여 페달 최소화
제4곡 랩소디는 특히 체력 소모가 큽니다. 열정적으로만 연주하다 보면 후반부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서, 저는 초반부의 ff를 조금 아끼는 방향으로 연습했습니다. 코다(제248마디~)에서 헤미올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마지막 세 코드를 장엄하게 맺는 것이 이 작품 전체의 결말이라는 점에서, 에너지 배분이 중요합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 연구에서는 그의 헤미올라 사용이 얼마나 체계적인지를 집중 조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순한 리듬 변화가 아닌 구조적 긴장과 해소의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인디애나 대학교 음악학부).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느끼지만,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브람스는 슬픔에 잠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의 노래 왈츠에서는 가끔씩 한 줄기 감동적인 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고전주의의 틀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낭만주의적 감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 작품은, 분석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곡은 사실 연주자가 성숙할 수록 그의 음악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