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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교향곡 5번 (형식미, 대위법과 푸가, 건축적 구조)

by 진헤 2026. 1. 28.

 

유럽건물

클래식 음악사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은 형식 그 자체로 승부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감정의 폭발이나 드라마틱한 서사보다는, 음악적 구조와 논리로 청중을 압도하는 이 교향곡은 '진짜 브루크네리안'을 가르는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처럼 그 자체로 완벽한 건축물인 이 작품은, 듣는 이에게 특별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형식미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은 1875년부터 1878년까지 작곡된 작품으로, 작곡가의 전 생애에서 정중앙에 위치하는 중요한 교향곡입니다.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브루크너가 작곡가로서 형식에 집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며 천착했던 대위법과 푸가가 소나타 형식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 교향곡은 '판타스티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벨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처럼 드라마가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크 시대의 판타지아, 즉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을 오케스트라로 확장한 개념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계속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자유롭게 펼쳐가는 방식은, 감정보다는 구조와 질서 속에서 음악이 스스로를 증명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전체 4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악장과 4악장이 B플랫 장조, 2악장과 3악장이 D단조로 대칭적 구조를 이룹니다. 이러한 수미상관식 구성은 작품 전체에 균형감을 부여하며, 각 악장마다 같은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등장합니다. 특히 피치카토로 시작하는 1, 2, 4악장은 '피치카토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낳기도 했습니다. 평균 연주 시간이 1시간 20분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작품은, 그 긴 시간 동안 청중을 하나의 명상적 공간 안에 머물게 만듭니다.

대위법과 푸가

브루크너 교향곡 5번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압도적인 부분은 4악장입니다. 이 악장은 브루크너의 최대 장기인 대위법과 푸가가 총동원되어, 작곡 기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B플랫 장조를 기본 조성으로 하는 소나타 형식 위에 푸가가 얹혀지는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함을 지닙니다.
4악장은 1악장 서주의 주제들이 복귀하면서 시작됩니다. 피치카토, 드레스덴 아멘과 유사한 선율, 오케스트라 총주의 유니즌, 금관악기의 코랄이 차례로 등장한 후, 클라리넷이 제1주제를 제시합니다. 이 주제는 콘트라바스로 이어지며 첫 번째 푸가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2주제, 판타지아 주제, 제3주제, 코랄 주제까지 총 5개의 주제가 등장하며, 1악장 서주의 4개 주제 요소까지 합치면 무려 9개의 주제가 복잡하게 얽힙니다.
전개부에서는 코랄 주제를 바탕으로 두 번째 푸가가 펼쳐지고, 다시 제1주제가 가져와져 이중 푸가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대위적 구성은 감정의 폭발이 아닌, 오랜 시간 쌓아온 논리가 마침내 완성되는 순간처럼 다가옵니다. 재현부는 상대적으로 간결하게 진행되는데, 이는 작품의 진정한 클라이맥스가 코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코다 부분은 3~4분에 불과하지만, 1시간 20분 동안 응축된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악보에 포르티시시모 표시가 나타나며, 브루크너 교향곡 중 가장 강렬한 엔딩을 선사합니다.

건축적 구조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두오모를 볼 때 그 수학적 완벽함과 설계도의 정교함을 이해하면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지만, 그저 올려다보기만 해도 그 위대함은 전해집니다. 이 교향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제 분석과 형식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음미하게 해주지만, 그저 소리로 감각적으로 받아들여도 그 아름다움은 충분히 전달됩니다.
1악장은 아다지오 서주와 알레그로 본편으로 구성되며, 서주만 해도 상당한 길이를 자랑합니다. 첼로와 콘트라바스의 무뚝뚝한 피치카토 위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상승 음형을 연주하고,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유니즌과 금관악기의 장엄한 코랄은 청중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듭니다. 본편에서는 3개의 주제가 등장하며, 각기 다른 조성으로 전개되어 화려한 색채감을 자아냅니다.
2악장은 D단조의 어두운 색채를 띠며, 오보에와 플루트, 클라리넷의 목관 앙상블이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피치카토의 정박과 자유로운 선율의 대비는 라이브 연주에서 특히 인상적입니다. 중간부는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을 예감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으며, 슈베르트의 그레이트 교향곡과도 정서적으로 연결됩니다. 3악장 스케르초는 D단조로, 유일하게 피치카토가 등장하지 않는 악장입니다. 스케르초 부분은 두 개의 주제로 나뉘며, 두 번째 주제는 오스트리아 전통 춤곡인 렌틀러 리듬을 사용합니다. 트리오 부분에서는 목관 앙상블과 호른이 어우러져 감동적인 선율을 선사합니다.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이 작품을 바그너의 반지 사이클과 비교하며, 끝을 바라보고 가는 장거리 마라톤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들의 황혼이 끝난 후에도 삶이 계속되듯, 브루크너 교향곡도 그러한 긍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한 음악적 구조물을 넘어, 듣는 이에게 시간의 감각을 흐리게 만들고 하나의 공간 안에 머물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입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은 형식이 곧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감정 표현보다는 구조와 질서 속에서 신앙적 긴장감과 정신성을 담아내며, 후기 낭만주의의 감정 과잉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처음에는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긴 전개가, 결국 완벽한 논리적 완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듣는 이에게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일구쌤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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