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시인의 사랑」 전 16곡 중 첫 6곡만 들어도 사랑의 시작부터 설렘까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반주로 석사과정을 다닐 당시 저희 학교는 성악반주도 필수로 실기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저는 주로 기악 악기 반주를 했기 때문에 가곡반주에 대한 경험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 곡을 들어보면 피아노 반주가 노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피아노가 단순히 반주가 아니라 또 하나의 목소리였던 것이죠. 하이네의 시가 가진 아이러니를 슈만이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냈는지, 그 안에서 연주자는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피아노 반주
슈만 가곡(Lieder)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피아노가 성악가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동등한 비중’이라는 말이 꼭 볼륨을 높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아노가 완전히 독립적인 선율과 화성적 존재감을 지니며, 시 속의 숨겨진 서사를 음악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의미죠.
제1곡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önen Monat Mai)’의 도입부는 청중의 마음을 허공에 둥둥 띄워놓는 듯한 긴장감을 주면서, 동시에 정결하고 순수한 마음을 뒤흔들며 이 사랑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섬세한 분산화음(아르페지오)으로 풀어냅니다. 그리고 제5곡 ‘나의 마음 적시리(Ich will meine Seele tauchen)’에 이르면, 16마디 내내 16분 음표로 이루어진 분산화음이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이 반주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너무 훌륭해서, 피아노 독주 소품으로 연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반주자로서 연습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바로 이 곡에서 성악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서로 음악을 만들어갈 때 파트너의 공간을 아주 섬세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성악가가 노래를 멈추고 쉬는 순간에도 피아노는 쉼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주(Postlude)는 성악가가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그 절절하고 슬픈 감정들을 피아노가 이어받아 쏟아내는 구간입니다.
제6곡 ‘거룩한 라인강에(Im Rhein, im heiligen Strome)’가 좋은 예입니다. 이 곡은 16마디에 달하는 긴 피아노 후주로 끝이 나는데, 여기서 관객은 라인강에 울려 퍼지는 성당의 오르간 소리에 흠뻑 젖은 채, 깊은 황홀경(트랜스)에 빠져 방황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악가가 무대 뒤로 퇴장했다고 해서 곡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피아노는 의도적으로 여운을 길게 늘이며 진짜 마지막 결말을 맺습니다. 이처럼 긴 후주는 슈만 가곡의 아주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피아노 단독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야 하며, 저 또한 후주 연습에 더욱 긴 시간을 투자하곤 합니다.
연가곡 해석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은 하나의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로 연결된 16개의 연가곡(Liederkreis)입니다. 하이네의 시집 《서정적 간주곡》을 바탕으로, 슈만은 이를 하나의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처럼 엮어냈습니다. 사랑의 기쁨으로 시작해 실연의 아픔을 거쳐, 결국엔 가슴 시린 허무한 추억으로 향하는 여정이죠.
1곡부터 6곡까지는 행복하게 시작되는 사랑의 서막입니다. 전체적인 조성의 흐름만 보아도 인간 감정의 이리저리 흔들리는 파도처럼 장조와 단조를 끊임없이 오고 갑니다. 제1곡은 f# 단조로 시작해 막 시작되는 사랑의 불안함과 묘한 설렘을 전달합니다. 제2곡은 A 장조로 옮겨가 순수하고 달콤한 고백을 건네고, 제3곡은 D 장조로 쾌활하게 터져 나오며 들뜬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러다 7곡부터 14곡까지 본격적인 이별의 아픔이 시작되고, 마지막 15, 16곡에 이르러서는 참담한 환멸과 허무함으로 점철됩니다.
저는 처음에 이 곡을 공부할 때 앞의 6곡만 똑 떼어놓고 연습했는데, 그건 정말 큰 실수였습니다. 전체 사이클의 큰 그림을 보고 나서야 슈만의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지 깨달았습니다. 슈만은 앞부분의 행복하고 황홀한 감정을 극대화함으로써, 뒷부분에 찾아올 비극적인 결말을 훨씬 더 뼈아프게 느끼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이 거시적인 설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각각의 작은 곡들이 가진 진짜 의미를 결코 풀어낼 수 없습니다.
형식적인 면을 보면, 3부분 형식(A-B-C)으로 확장된 제6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플한 2부분 형식(A-B)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전주의의 엄격하고 딱딱한 대칭미보다 시가 가진 정서적 뉘앙스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던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답게, 슈만은 자신의 음악적 목적에 맞추어 전통 형식을 아주 유연하게 변형시켰습니다. 곡의 길이는 짧게는 16마디에서 길게는 58마디 정도로 콤팩트하지만, 전주와 간주, 후주가 음악적 DNA 속에 아주 끈끈하게 통합되어 있습니다.

성악 표현
성악 파트의 멜로디 선율이 피아노만큼 테크닉적으로 화려해 보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시가 가진 섬세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성악가는 온갖 음악적 기교를 총동원해야 합니다. 제4곡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Wenn ich in deine Augen seh'...)’는 말하듯이 노래하는 레치타티보(recitativo) 스타일을 적극 활용합니다. 선율의 화려함은 철저히 배경으로 숨기죠. 특히 그 유명한 고백인 “Ich liebe dich(당신을 사랑해요)” 구절에 이르면 슈만은 의도적으로 음정을 평평하게 깎아내립니다. 성악가에게 이 부분을 ‘노래’하기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진심 어린 고백’처럼 툭 내뱉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이 곡에서는 다이내믹(强弱)의 미묘한 숨결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1곡은 피아노(p, 작게)로 시작해 메조포르테(mf, 조금 세게)로 살짝 고조되었다가 다시 피아노(p)로 가만히 돌아옵니다. 이때 성악의 마지막 음은 악보에 적힌 원래 박자보다 아주 살짝 더 길게 끌어주어, 해결되지 않고 공중에 붕 ‘매달려 있는 듯한’ 불완전한 느낌을 살려야 합니다. 이는 이 고백이 아직 끝난 게 아니며, 다음 곡으로 감정이 흘러넘쳐 이어질 것이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리허설 때 제 파트너가 이 부분에서 숨이 모자라 마지막 음을 툭 끊어버리는 바람에 결말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마지막 남은 숨 한 모금까지 쥐어짜 내며 그 여운을 붙잡았을 때 비로소 음악적 마법이 부려지더군요.
제3곡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Die Rose, die Lilie, die Taube, die Sonne)’은 8분 음표가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아주 빠른 템포의 곡입니다. 여기서는 칼날 같은 정확한 독일어 발음(딕션)이 생명입니다. 자음들을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으면 시의 가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뭉개진 소음처럼 변해버립니다. 특히 정관사 “die”가 네 번 연속으로 밀려드는데, 각각의 “die”를 명확하고 또렷하게 딕션으로 받아쳐 주어야만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이라는 네 가지 대상이 관객의 마음속에 선명한 다채로운 색깔로 살아납니다.
목소리의 질감 역시 양극단을 오갑니다. 제5곡에서는 음과 음 사이의 이음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레가토(legato)의 흐름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치 백합꽃잎 속에 내 영혼을 깊숙이 함몰시켜 빠뜨리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죠. 반대로 제3곡은 스타카토와 레가토가 쉼 없이 교차합니다. 터질 듯이 방방 뛰는 연인의 불규칙한 심장박동과, 모이를 콕콕 쪼아 먹는 비둘기들의 재빠른 움직임을 동시에 그려내는 역동적인 표현입니다.
화성 진행
슈만은 화성을 통해 시의 분위기를 시각화하고 청각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곡은 으뜸화음(tonic, I)으로 시작하지만, 제1곡과 제5곡은 버금딸림화음(subdominant, IV) 또는 ii화음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안정감보다 떠다니는 듯한 불안정한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입니다. 사랑의 설렘은 확실하지 않고 어딘가 불안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부속화음(secondary dominant)도 자주 등장합니다. 부속화음이란 주요 3화음(I, IV, V) 이외의 화음에 딸림화음 기능을 부여한 것으로, 일시적인 전조 효과를 만들어 화성의 색채를 풍부하게 합니다. 제2곡 12마디에서는 부속 7화음을 사용해 종달새의 지저귐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합니다.
제6곡에서는 나폴리 6화음(Neapolitan 6th chord)이 나타납니다. 나폴리 6화음이란 단조에서 ii도 음을 반음 내려 bII6 형태로 만든 화음으로, 극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더해줍니다. 이 곡은 라인강과 쾰른 대성당이라는 장엄한 배경을 그리기 위해 종교적이고 무게감 있는 화성을 사용했는데, 나폴리 6화음은 그 절정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종지(cadence) 처리도 독특합니다. 제1곡은 반종지(half cadence)로 끝나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주고, 제4곡은 변격종지(plagal cadence, IV-I)로 차분히 마무리합니다. 일반적인 정격종지(authentic cadence, V-I)를 피하고 다양한 종지를 사용함으로써 각 곡마다 다른 여운을 남깁니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 첫 6곡은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불안과 예감이 섞여 있습니다. 피아노 반주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이고, 성악은 시의 언어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통로입니다. 저는 이 곡들을 공부하면서 음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슈만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작정 연습을 많이 하기보다는 곡의 내면을 더욱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이 매우 어려웠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께 많이 지적도 받았습니다. 연주자는 악보에 적힌 기호를 소리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작곡가와 시인 사이에서 그들의 감정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번역자입니다. 이 곡을 연주하려는 분이라면 단순히 음을 정확히 내는 것을 넘어, 하이네가 느낀 사랑과 슈만이 표현한 음악의 결을 함께 느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