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 소나타 D.784가 작곡된 1822년은 슈베르트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슈베르트가 피아노 소나타 창작에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초기 소나타의 단조로운 느낌을 넘어 음악적으로 많이 성숙해졌으며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극적인 표현이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이 곡의 첫 네 마디에 담긴 세 개의 모티브가 이 긴 곡 전체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연주하면서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형식 안에 이렇게 다양한 화성과 전조가 숨어 있다는 게 이 곡의 핵심입니다.
작품 분석
제가 직접 분석해보니, D.784의 1악장은 단순해 보이는 세 개의 모티브(motif)로 전체를 운용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모티브란 악곡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음악적 단위로, 반복되거나 변형되면서 곡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을 만들어냅니다. 슈베르트는 이 세 모티브를 단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화성을 바꾸거나 음역을 이동시키거나 리듬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킵니다.
발전부(development section)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발전부란 소나타 형식에서 제시부의 주제를 해체하고 변형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중간 단락을 가리킵니다. D.784의 발전부는 F장조로 시작해서 d단조와 F장조를 교차하다가, 149마디부터는 Ab장조, Bb장조, C장조, f단조를 빠르게 통과하며 159마디에 a단조로 귀환합니다. 제가 이 전조의 흐름을 손으로 따라가면서 처음 깨달은 건, 슈베르트가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게 아니라 아주 계산된 경로로 긴장과 이완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반음계적 화성진행(chromatic harmony)도 이 악장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반음계적 화성진행이란 반음 단위로 이동하는 화음 연결을 활용해 색채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기법으로, 고전 작곡가들도 사용했지만 슈베르트는 이를 훨씬 과감하고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122마디 이후 이어지는 화음 부점 리듬 진행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반복되는 화음 패턴이 단순해 보이지만, 거기에 실린 조성의 변화가 끊임없이 음악을 앞으로 밀어붙입니다.
1악장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시부 1주제: 세 모티브가 유니즌(unison)으로 제시, a단조
- 발전부: F장조 출발 → 여러 조성을 경유 → a단조 귀환
- 재현부 2주제: 조성이 A장조로 전환되며 리듬형도 변화
- 코다: A장조로 마무리되어 단조의 어두운 분위기를 밝게 전환
서양 음악사 연구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베토벤처럼 모티브 자체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방식보다 선율과 화성의 색채 변화를 통해 발전을 구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출처: 한국음악학회). 이것이 결함이 아니라 슈베르트만의 미학적 선택이라는 점, D.784를 직접 연주해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테크닉 해결법
이 곡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저도 처음엔 악보가 단순해 보여서 테크닉적으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연주해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1악장에서 가장 먼저 발목을 잡은 건 발전부 113마디 이후 왼손 옥타브 부점 리듬이었습니다.
이 구간은 저음부에서 옥타브(octave)가 계속 하행하면서 부점 리듬을 유지해야 합니다. 옥타브란 같은 음이름을 가진 두 음 사이의 음정으로, 피아노에서는 8개의 건반 간격입니다. 이 구간에서 손목이 굳으면 소리가 탁하고 불균형하게 들리기 때문에,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반복 연습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각 옥타브를 누른 직후 손목의 긴장을 바로 풀고 다음 음으로 이동하는 느낌, 그 타이밍을 느린 속도에서 먼저 몸에 새겨야 합니다.
2악장의 피아니시시모(pianissimo) 처리도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습니다. 피아니시시모란 악보에서 ppp로 표기되는 매우 여린 셈여림으로, 단순히 소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음색 자체를 바꿔야 하는 수준의 섬세함을 요구합니다. 소프트 페달(una corda)을 활용하면서 팔과 손목의 위치를 약간 높이 고정하고 손가락의 건반 터치 깊이를 극도로 얕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요. 저에게 가장 취약한 점이 세심함이라 이 연습 방법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후렴구 음형이 주제 선율의 피아노와 확실히 구별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3악장 Allegro vivace의 셋잇단음표(triplet) 연속 구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잇단음표란 본래 2등분되는 박을 3등분하여 연주하는 리듬 단위로, 빠른 템포에서 양손으로 동시에 구사하면 급해지기 쉽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구간에서는 메트로놈 없이 연습하면 자신도 모르게 템포가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느린 템포에서 일정한 박을 체득한 다음 단계적으로 템포를 올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빠른 완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테크닉적으로 특히 집중해서 준비해야 할 구간을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 1악장 발전부 113~121마디: 왼손 옥타브 부점 리듬 하행 구간
- 1악장 코다 268~272마디: forte와 piano 사이의 급격한 다이나믹 전환 + 트레몰로
- 2악장 52~61마디: 오른손 트릴(trill) 손가락 번호 선택과 음량 조절
- 3악장 43~44마디: 16분음표 빠른 이동 구간의 정확한 그립 확보
국내 피아노 연주 교육 관련 연구에서도 슈베르트 소나타의 기술적 난점으로 화성 진행의 급격한 다이나믹 변화와 폭넓은 음역 이동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출처: 한국피아노교수법학회). 이 부분은 기술보다 음악적 해석이 먼저 정해져야 신체 동작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어떤 소리를 만들고 싶은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결국 음악적 방향도 잃게 됩니다.
음대 다니던 시절 제 담당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슈베르트는 절대 치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는데요. 왜냐하면 사실 슈베르트의 곡들은 저의 음악적 스타일과 극도로 맞지 않았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즐겨 듣지도 않아서 딱히 큰 애정이 없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양한 악기들의 반주를 맡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슈베르트 곡을 연주해야 했는데요, 그제서야 그의 음악을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D.784는 연주자가 슈베르트의 음악 언어를 어느 정도 내면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곡입니다. 화성 분석을 먼저 충분히 하고 손가락 연습에 들어가는 순서가 이 곡에서는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 김경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음악 어법적 특징", 음악연구 29 (2003)
- 박유미, 피아노 문헌, 음악춘추사 (2011)
- 홍정수 외, 두길 서양음악사2, 나남출판 (1997)
- 송진범, 구조와 역사로 본 음악, 작은우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