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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타나 몰다우의 비밀 (나의 조국, 구조, 400년의 관통)

by 진헤 2026. 1. 27.

 

체코

체코의 국민 작곡가 스메타나의 대표작 《나의 조국》 중 가장 유명한 곡인 〈몰다우〉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400년에 걸친 음악사적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곡에 담긴 주선율의 기원과 표절 논란, 그리고 유럽 전역을 관통한 선율의 여정을 살펴봅니다. 두 개의 샘물에서 시작해 하나의 강으로 합류하는 음악적 구조는 흩어진 민족의 기억이 모이는 과정을 상징하며, 청력을 잃은 작곡가가 기억 속 조국의 풍경을 음표로 새긴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메타나와 《나의 조국》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1824년 3월 2일에 태어난 체코의 국민 작곡가로, 드보르작의 대선배이자 체코 국민악파의 선구자입니다. 그가 《나의 조국》을 작곡하던 1874년 하반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베토벤처럼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오른쪽 귀부터 시작된 난청은 빠르게 양쪽 귀로 확산되어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명에 시달리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연작 교향시를 완성했습니다.
《나의 조국》은 1874년부터 1879년까지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작곡된 여섯 개의 교향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곡인 〈비셰흐라트〉는 프라하 근교의 고성을 묘사하며, 이어지는 〈몰다우〉는 체코를 가로지르는 강의 여정을 그립니다. 세 번째 곡 〈샤르카〉는 보헤미아 전설의 여전사를, 네 번째 〈보헤미아의 초원과 숲에서〉는 전원 풍경을, 다섯 번째 〈타보르〉는 15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를, 마지막 〈블라니크〉는 전설적인 기사단이 잠든 산을 다룹니다.
당시 보헤미아는 수백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독일어권 지배를 받았고, 민족적으로는 슬라브인이지만 독일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스메타나 역시 독일 스타일의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그는 보헤미아 민족의 선율과 정서를 음악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체코 국민악파의 첫 신호를 쏘아올렸고, 《나의 조국》은 그의 음악적 역량이 집약된 최고의 걸작이 되었습니다.
《나의 조국》은 각 곡이 1875년부터 1880년까지 하나씩 초연되었으며, 전체 작품은 체코의 역사와 자연, 전설을 아우르는 민족 교향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매년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는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의식처럼 정착되었으며, 2024년에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 작품을 연주하며 스메타나 탄생 20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몰다우의 구조

〈블타바〉는 체코어 이름이며, 독일어로는 몰다우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강은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발원하여 체코를 거쳐 흐르기 때문에 독일어 이름이 더 널리 퍼졌지만, 체코인들은 자국어 명칭인 블타바를 사용합니다. 약 12~13분 길이의 이 교향시는 여섯 개의 파트로 나뉘며, 각 파트는 강의 여정을 따라 다양한 장면을 묘사합니다.
첫 번째 파트는 독일어로 'Die Quelle(샘물)'이라 불리며, 두 개의 샘물에서 블타바 강이 발원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플루트 두 대가 따라라라란 하며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재현하고,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똑똑 물방울 소리를 표현합니다. 퍼스트 플루트와 세컨드 플루트가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이 부분은 연주자들에게 꽤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합니다. 두 샘물은 체코어로 스투데나 블타바(차가운 블타바)와 테플라 블타바(따뜻한 블타바)로 불리며, 이 지류들이 합쳐지면서 드디어 우리가 잘 아는 몰다우의 주선율이 E단조로 현악기에 의해 흘러나옵니다.
두 번째 파트는 'Waldjagd(숲속의 사냥)'로, 트럼펫과 호른이 강렬한 행진곡 풍의 선율을 연주하며 숲속에서 사냥꾼들이 나팔을 불고 말을 달리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보헤미아의 울창한 숲은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하며, 이 부분에서는 금관악기가 웅장한 사냥 장면을 생동감 있게 재현합니다.
세 번째 파트는 'Bauernhochzeit(농부들의 결혼식)'로, 제1바이올린이 흥겨운 춤곡 선율을 연주하며 마을의 축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보헤미아의 민속적 정서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네 번째 파트는 'Mondschein(달빛)'과 'Nymphen-Reigen(물의 요정들의 윤무)'으로, 음악이 잦아들며 플루트가 따라라라라라 하며 어스름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달빛이 강물에 비치는 가운데 물속 요정들이 춤추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서주나 《로엔그린》 1막 전주곡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다섯 번째 파트는 'Sankt-Johann-Stromschnellen(급류)'로, 오케스트라가 빠른 속도로 연주하며 강폭이 좁아져 물결이 빨라지는 급류를 표현합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파트는 'Die Moldau strömt breit(몰다우 강이 넓게 흐르다)'로, 조성이 E장조로 바뀌며 밝고 웅장한 총주가 펼쳐집니다. 강이 프라하로 들어서며 하류가 광활해지는 모습을 그리며, 이때 첫 곡 〈비셰흐라트〉의 동기가 다시 등장해 강이 비셰흐라트 성 아래를 지나 엘베 강으로 합류하는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400년을 관통한 선율의 비밀

〈블타바〉가 1875년 4월 4일 프라하에서 초연되자 체코 시민들은 열광했지만, 북쪽 스웨덴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몰다우의 주선율이 자국 민요 'Ack Värmeland, du sköna(아, 그대 아름다운 베름란드)'를 표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민요는 1822년에 악보로 출판되었고, 스메타나가 1856년부터 1861년까지 5년간 스웨덴 예테보리에 살았기 때문에 이 곡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스메타나는 이를 부인하며 자신이 어린 시절 들었던 보헤미아 민요를 사용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스웨덴 민요의 기원을 추적한 결과, 놀랍게도 18세기 네덜란드 민요가 원곡임이 밝혀졌습니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항해와 이주 과정에서 'Waar de blanke top der duinen(오, 네덜란드여)'라는 노래를 주변 국가로 전파했고, 이것이 스웨덴 남부로 퍼진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는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모차르트는 1778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유행하던 'Ah! vous dirai-je, maman(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이라는 프랑스 유행가를 듣고,782년경 비엔나에서 이를 주제로 12개 변주곡(K.265/300e)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바로 우리가 '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고 있는 선율입니다. 그런데 이 변주곡의 제8변주는 전혀 다른 선율이 나오는데, 바로 몰다우 주선율과 동일한 선율입니다. 이는 18세기 프랑스에서도 네덜란드 선원들의 민요가 유행했음을 증명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도 1842년에 출판된 칸초네 'Fenesta vascia(불 꺼진 창)'의 첫 부분이 몰다우 선율과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계속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16세기 북이탈리아에 도달했습니다. 테너 주세페 첸치가 1600년에 악보로 출판한 마드리갈 'La Mantovana(만토바 여인)'가 바로 이 선율의 원조였습니다. 이 선율이 전 유럽에 퍼진 결정적 계기는 1645년 밀라노의 바이올린 주자 가스파로 자네티가 출판한 바이올린 교본 'Scolaro'에 만토바 춤곡이 수록되면서부터였습니다.
17세기 롬바르디아 지역은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같은 명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활동하던 곳이었고, 전 유럍의 바이올린 학습자들이 이탈리아식 교본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동유럽의 집시 음악과 유대인 음악에서 바이올린은 필수 악기였기 때문에 만토바 선율은 보헤미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슬라브 지역 전역에 민요처럼 정착했습니다. 따라서 스메타나가 어린 시절 들었다는 보헤미아 민요도 거짓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예는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몰도바 출신 유대인 작곡가 사무엘 코헨이 1888년 자신의 고향에 내려오던 유대인 민요를 사용해 히브리어로 'Hatikvah(희망)'라는 노래를 작곡했고, 이것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시 국가로 채택되어 2004년 공식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첫 선율 역시 몰다우와 동일합니다.
20세기에도 이 선율의 생명력은 계속되었습니다. 1911년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는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아들을 위해 클라리넷과 비올라를 위한 이중협주곡 Op.88을 작곡했는데, 1악장 주제가 역시 이 선율입니다. 1950년대에는 재즈 테너 색소폰 주자 스탄 게츠가 스웨덴에서 활동하며 스웨덴 민요를 듣고 'Dear Old Stockholm'이라는 재즈 스탠다드 곡을 만들었고,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같은 거장들이 재해석하며 재즈 역사에 남았습니다. 

 

이처럼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단순한 관현악 모음곡이 아니라, 한 작곡가가 자신의 땅과 언어, 기억을 음악으로 기록한 일종의 정서적 연대기처럼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몰다우〉는 아름다운 선율로 먼저 다가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체코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두 개의 샘에서 시작해 점차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도입부는 몰다우 강의 실제 흐름이자, 흩어졌던 민족의 기억이 하나로 모여드는 과정을 은유하는듯 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몰다우의 주제 선율은 스메타나가 새롭게 만든 멜로디라기보다,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민요적 선율을 변형한 것입니다. 이 점은 〈몰다우〉가 개인적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 기억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음악이 흐를수록 목가적 풍경, 축제, 급류와 같은 장면들이 차례로 펼쳐지지만, 그 아래에는 끊임없이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깔려있는 듯 합니다.

《나의 조국》을 듣고 나면, 이 작품이 아름답기만 한 음악이 아니라 역사와 상실, 그리고 소속감에 대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몰다우의 선율이 오래도록 귀에 남는 이유도, 그 선율이 단순한 강의 노래가 아니라 한 민족이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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