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Op.30은 1악장(Andante, 6/8박자)과 2악장(Prestissimo Volando, 12/8박자)이 아타카(attacca)로 이어지는 2악장 구성입니다. 여기서 아타카란 한 악장이 끝나는 즉시 멈추지 않고 다음 악장으로 바로 이어 연주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두 악장이 마치 하나의 곡처럼 흘러야 한다는 뜻이죠. 처음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Op.30을 연습하기 시작하면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악보에는 루바토 지시어가 딱 한 군데밖에 없는데, 막상 그의 녹음을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음악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악보대로만 치면 뭔가 평면적으로 들렸는데, 그게 왜인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Op.30을 연습하며 직접 부딪혔던 문제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연주 해석의 핵심을 풀어보겠습니다.
1악장 : 루바토와 신비화음
처음에 저는 1악장을 악보에 충실하게, 그리고 꽤 '정확하게' 쳤습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악보대로인데 스크리아빈답지 않은 느낌. 나중에야 깨달은 건데, 이 곡의 핵심은 악보에 없는 것들에 있었습니다.
스크리아빈은 연주할 때 악보에 표기되지 않은 루바토(rubato)를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했습니다. 루바토란 박자를 고정된 템포 안에서 늘이거나 줄이며 감정적인 유연성을 만드는 연주 기법입니다. 단순히 '느리게 치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가 상행할 때는 템포를 미세하게 당기고, 하행할 때는 자연스럽게 늦추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이 방식으로 연습해보니 같은 음형도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들렸습니다. 스크리아빈 자신이 상행 선율을 "이상적인 창조력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라 했고, 하행 선율은 "그 노력 뒤의 나른함, 극도의 피로"라고 표현했는데, 루바토 없이는 이 온도 차이를 전달할 방법이 없더군요.
1악장에서 특히 공들여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신비화음입니다. 신비화음(Mystic Chord)이란 스크리아빈이 개발한 화음으로, 완전4도·증4도·감4도 등 여러 종류의 4도 음정을 층층이 쌓아 만든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전통적인 3도 쌓기 화음이 아니라 4도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조성감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화음이죠. Op.30의 1악장 A-b 부분(마디 18, 22)에서 완벽한 형태의 신비화음이 등장하고, 그 외에도 4도 음정의 중첩이 곡 전반에 걸쳐 나타납니다.
이 화음을 표현하는 데 제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낀 방법은 댐퍼 페달(damper pedal)을 길게 밟아 한 번의 페달 안에 여러 음이 동시에 공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댐퍼 페달이란 오른발로 밟아 피아노 내부의 댐퍼(소음 장치)를 올려 음이 지속적으로 울리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사실 댐퍼 페달은 전공자들도 흔히 사용하지 않는 페달입니다. 사용에 어색할 수 있지만 신비화음 특유의 몽롱하고 희미한 울림은 이 페달 없이는 구현이 어렵습니다.
1악장 연주 시 핵심적으로 체크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선율은 손목과 팔에 힘을 빼고 손끝으로 건반을 절반 정도만 지그시 눌러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음색을 만들 것
- 상행 선율에서는 음과 음 사이를 루바토로 늘리되 전체적으로 템포를 살짝 앞당기고, 하행 선율에서는 반대로 편안하게 늦출 것
- 신비화음이 등장하는 마디에서는 댐퍼 페달을 길게 밟아 여러 음이 섞여 울리도록 할 것
- 우나 코다 페달(una corda pedal)을 병행해 피아노(p) 이하의 다이나믹을 극대화할 것
여기서 우나 코다 페달이란 왼발로 밟는 페달로, 피아노 내부의 해머가 세 줄 대신 한두 줄만 타격하게 해 음량과 음색 자체를 부드럽게 바꾸는 장치입니다. 단순히 약하게 치는 것과는 음색의 질감이 다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조금 작게'가 아니라 '다른 악기처럼 들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2악장 : 폴리리듬과 페달 운용의 기술
2악장은 표현 지시어 자체가 'Prestissimo Volando', 즉 "가급적 빠르게, 날듯이"입니다. 볼란도(Volando)란 이탈리아어로 '날아가듯'을 의미하며, 음표들이 피아노 위를 가볍게 스치듯 지나가는 질감을 요구합니다. 스크리아빈이 이 곡을 가르칠 때 "가볍게,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2악장에서 가장 고전했던 부분은 폴리리듬(polyrhythm)이 등장하는 구간이었습니다. 폴리리듬이란 두 손이 서로 다른 리듬 단위를 동시에 연주하는 기법으로, 예를 들어 오른손이 3개의 음을 연주하는 동안 왼손은 4개의 음을 치는 3:4, 혹은 5:3, 5:4 같은 구조입니다. 악보를 보면 간단해 보이는데, 실제로 치면 두 손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훈련이 충분히 돼 있지 않으면 어느 한 손이 상대방에게 끌려가 버립니다.

스크리아빈의 연주에서 또 하나 독특한 것은 각 성부의 불일치, 즉 양손을 정확히 동시에 치지 않는 방식입니다. 각 성부의 불일치란 동시에 눌러야 할 음을 미세하게 어긋나게 배치해 즉흥적이고 유연한 흐름을 만드는 기법으로, 다성음악의 각 선율 라인을 귀로 구분하기 쉽게 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확한 연주 아닌가?' 싶었는데, 직접 적용해보니 음악의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2악장의 페달 운용은 1악장과 결이 다릅니다. 1악장에서 페달이 주로 신비화음의 색채를 위해 쓰인다면, 2악장에서는 다이나믹의 대비를 만드는 도구로도 활용됩니다. 포르테(forte) 부분에서는 페달을 깊게 밟아 울림을 충분히 주고, 곧바로 피아노(piano) 구간에서는 페달을 완전히 떼어 페달 없이 연주합니다. 이 대비가 생각보다 훨씬 극적인 효과를 냅니다. 스크리아빈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페달의 유무를 대비시켜 음색을 확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크리아빈의 연주 스타일에 관한 연구는 아나톨 레이킨(Anatole Leikin)의 저서 등을 통해 벨테-미뇽 롤(Welte-Mignon roll) 녹음 분석으로 상당 부분 밝혀졌습니다. 벨테-미뇽 롤이란 연주자의 건반 압력과 음의 길이를 특수 종이 롤에 기록해 그대로 재생하는 초기 자동 재생 피아노 기술입니다. 이 기술 덕분에 스크리아빈이 실제로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습니다(출처: Ashgate Publishing).
또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교육 배경을 보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사포노프에게 사사한 경험이 그의 터치와 음색에 대한 집착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사포노프는 손과 팔이 하나로 움직이는 부드러운 원운동을 강조했고, "정신이 손가락과 소리 모두를 지배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결국 스크리아빈의 연주는 기교보다는 생각하며 치는 방식에 더 가까웠습니다(출처: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제가 스크리아빈 소나타 Op.30을 연습하며 느낀 건, 이 곡이 악보만으로는 절반도 전달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스크리아빈이 악보에 기록하지 않은 루바토, 성부 간의 미세한 어긋남, 페달의 시적인 활용이 곡의 본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녹음을 반복해서 듣고 손이 그 흐름을 기억하게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곡에 막혀 있다면, 먼저 스크리아빈 자신의 피아노 롤 녹음을 찾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악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줄 겁니다.
참고: - Anatole Leikin, The Performing Style of Alexander Scriabin (Burlington: Ashgate Publishing Company, 2011)
- 태림출판사 편집부, 『세계음악전집-스크리아빈』 (서울: 태림출판사, 1997)
- 세광출판사 편집국, 『명곡해설전집』 (세광출판사, 1982)
- 김혜정, "Alexander Nikolaevich Scriabin의 Piano Sonata에 관한 分析硏究"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