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음악사에서 스트라빈스키만큼 양식적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작곡가는 드뭅니다. 러시아 태생의 그는 원시주의에서 신고전주의로, 다시 음렬주의로 이행하며 끊임없이 변모했습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약 30년간 지속된 그의 신고전주의 시기는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질서와 구조를 통해 낭만주의적 감정을 통제하려는 냉철한 미학적 선택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대조와 충돌이라는 독특한 음악적 양식으로 구현되었고, 전통에 대한 그만의 독자적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신고전주의의 형성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1920년 발레곡 <풀치넬라>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지만, 그 씨앗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부터 싹트고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적 표현성과 인상주의의 모호성에 반감을 드러내며 '표현의 단순성'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 장 콕토는 에세이 "수탉과 어릿광대"에서 프랑스 음악의 더욱 '단순'하고 '반낭만적' 스타일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했으며, 화가 피카소 역시 단순성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프랑스 문화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는 1915년 비평가 칼 밴 베크텐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자신이 프랑스의 새로운 예술적 조류를 간파하고 있음을 공식화했습니다. 특히 사티와의 만남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사티는 라벨이나 드뷔시처럼 프랑스 전통 음악에 직접적으로 되돌아가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회고주의를 벗어나야 할 낡은 가치로 여겼습니다. 콕토가 표현한 사티의 '새로운 단순성'은 18세기의 노스텔지어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고전주의였으며, 당시 비평가들은 사티의 음악을 "과장되지 않은 예술, 벌거벗은 예술, 리얼리스트적 예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사티의 '단순함', '순수함', '간결함' 등의 고전주의적 특성들을 19세기와 단절할 수 있는 중요한 미학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현악사중주를 위한 세 개의 소품>(1914)과 <세 개의 쉬운 소품>(1915)에 대해 "나의 예술에서의 중요한 변화"라고 회고했으며, 프랑스를 통해 명료함과 정확성을 길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외부 영향의 수용이 아니라, 러시아적 표현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했던 그의 내적 필요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신고전주의는 스트라빈스키에게 격정의 시대를 건너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자, 질서와 냉정함을 통해 음악의 의도를 또렷하게 만드는 방법론이었습니다.
음악적 양식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작품에는 동시대의 다른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주요 음악적 양식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대조'와 '충돌'입니다. 프랑스 문학과 음악, 예술을 분석한 로저 샤턱은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예술이 서로 관련성 없는 요소들이 만나 일어나는 '대조'와 '충돌'을 특징으로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의 연속성과 통일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구성 방식을 제안하며,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의 임의적 병치와 강제적 중첩을 통해 만들어진 동시성이 예술의 새로운 논리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 영리하게 반응하여 그런 요소들을 자신의 음악 어법으로 흡수했습니다. <현악사중주를 위한 세 개의 소품>은 러시아의 민속 선율을 연상케 하지만, 작곡 방식에 있어서는 이미 변화된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각각의 모티브들은 어떤 음정적 변화 없이 4개 혹은 5개의 음으로 단순하게 반복되지만, 온음계적 요소와 8음음계적 요소를 띄는 모티브들이 서로 충돌하는 방식은 그의 러시아 시기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한 작품 안에 현대의 요소와 과거의 요소를 병치시켜 음향적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단순히 과거의 음조직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본 음조직에 포함되지 않은 음들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음향적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은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과 신고전주의 작품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과거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효과는 다른 신고전주의 작곡가들과 스트라빈스키를 구분하는 핵심입니다.
헤르만 다누저는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를 구분하는 또 다른 특징으로 '패러디' 혹은 '낯설게 하기', '변형' 등을 꼽았습니다. 이는 러시아 문학의 형식주의와 연결됩니다. 형식주의는 옛 단어가 새로운 연관 관계에서 사용되는 '패러디' 방법을 제안하는데, 이때 옛 단어는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작품 안에서 '소외'됩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선율, 모티브, 악절 등에 이러한 요소들을 적용시키며, 단순히 과거의 양식들을 차용하거나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구조화된 음악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도록 조직했습니다. 에드워드 콘은 스트라빈스키가 관습적인 패턴들에 대한 기대감을 의도적으로 깨부숨으로써 얻게 되는 긴장감을 활용했다고 설명합니다. 고전적 틀에 현대적 요소를 단순히 채우는 것은 스트라빈스키에게 큰 의미가 없었으며, 빌려온 역사적 기법에 현대적 기법을 충돌시킴으로써 만들어지는 효과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전통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관은 신고전주의의 미학관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음악관은 반낭만적, 반주관적, 반표현적이며, 절대음악 사상의 추구로 나타납니다.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이란 시간 속에 나타나는 '질서'이자, 작곡이란 다수의 소리를 적절한 음정 관계에 따라 '질서화'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일련의 소리들이 모이는 중심이 어디인지를 찾고, 혹은 어떠한 중심이 주어졌다면 거기에 수렴하는 소리들의 조합을 찾으며, 일종의 음악적 구성을 만드는 객관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질서와 유사한 의미로 '법칙, 균형, 구조성'이란 개념을 사용했으며,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무질서, 카오스, 혁명'을 꼽았습니다. 특히 '혁명'이란 개념을 '혼란'의 개념과 동일하게 생각하면서 '혁명'을 예술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역사적 연속성을 파괴하는 혁명은 그의 전통관과도 상응되는 개념이었습니다. 계속된 양식 변화에도 그의 창작 시기 전체를 관통하던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음악적 전통에 대한 관심과 존경'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에게 전통은 단지 과거의 산물이 아닌 창조의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요인이자, 현재를 자극하고 가르치는 힘이었습니다. 그는 전통이 굳어져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유동적인 것으로, 잘 만들어서 잘 물려줘야 하는 일종의 유산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전통의 범위는 고대 그리스의 음악부터 베토벤, 베르디, 그리고 베베른의 음렬기법 및 자신 고유의 작품까지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에게 전통은 기존의 것에 대한 반복이 아니라 새것을 만들기 위해 회복해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이렇듯 옛것에 강한 의미를 부여한 스트라빈스키의 전통관은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20세기 전반의 분위기 속에서 매우 독자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는 향수가 아니라 거리 두기를 통한 감정의 통제였습니다. 고전적 형식과 명확한 구조를 차용하지만 그 안의 리듬과 화성은 여전히 날카롭고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음악의 의도가 또렷해지는 역설, 그것이 바로 스트라빈스키 신고전주의의 핵심이었습니다. 질서와 냉정함은 격정의 시대를 건너는 그의 생존 전략이자, 음악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이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