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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음악의 발전 (민족주의,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by 진헤 2026. 2. 8.

스페인광장

 

스페인 음악은 17세기까지 유럽 음악사에서 변방의 위치에 머물렀으나, 19세기 말 민족주의 물결과 함께 독자적인 음악 언어를 구축하며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진입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스페인 고유의 민속 춤곡 리듬과 선율, 그리고 이를 서양 음악의 화성 체계와 결합시킨 작곡가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엔리케 그라나도스는 민족적 소재를 개인의 서정적 감성과 융합시켜 스페인 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민족주의

스페인 음악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첫 번째는 19세기 말 융성했던 민족주의 음악의 경향입니다. 이 시기 스페인의 작곡가들은 호타(jota)와 판당고(fandango) 같은 민속 춤곡의 리듬을 서양음악의 화성 체계와 결합시켜 완전히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출했습니다. 호타는 빠른 3박자 춤곡으로 4마디의 프레이즈를 가지며 빠르고 휘몰아치는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미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스페인 광시곡, (Rhapsodie Espagnole)》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호타 리듬은 서양 음악에서 이국적인 소재로 인식되었습니다. 판당고 또한 호타와 같은 맥락의 춤곡이지만 텍스트의 길이가 다르고 더욱 선법적이며 화성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페인의 지리적 이점입니다.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아프리카와 북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고, 지중해와 대서양으로 길게 열려진 해안선은 유럽뿐만 아니라 동방과의 접촉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요인은 서양과 동양을 아울러 여러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게 했고, 그 문화들이 복합되어 지금의 스페인 문화로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그라나도스가 태어난 카탈란(Catalan) 지방은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서 당시 문화계의 주류를 쉽게 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중동 국가에 근접해 있어 타국의 음악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스페인 음악 속에 녹아있는 대중적 선율과 춤곡의 리듬입니다. 스페인의 민속춤곡은 청중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요소로 작용했으며, 다양한 스페인의 민속춤곡은 타 지방의 작곡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작곡 소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라나도스의 성공적인 미국 연주 여행이 스페인 음악 발달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종래의 낭만음악에 스페인의 민속적 소재를 반영시킨 음악이었고, 이러한 참신함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에 있어 매우 관대했던 미국 사회의 호기심을 충분히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라나도스

1867년 7월 27일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는 스페인 카탈로니아의 레디다에서 쿠바 출신의 작곡가 군인인 아버지와 북 스페인의 산탄데르 태생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처음 그라나도스가 음악을 배운 것은 레디다에 머물러 있던 군대의 군악대 지휘자로부터였고, 훗날 바르셀로나로 가서 후안 바우티스타 푸홀의 제자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게 됩니다. 16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 음악원 콩쿨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스페인 음악의 부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인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1841~1922)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잠시 파리 음악원으로의 입학시험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난 그라나도스는 샤를 드 베리오에게서 2년간 교습을 받은 후 188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피아니스트로 화려하게 입성식을 치릅니다. 비록 25세 때부터 작곡에 주력하기 시작한 탓에 지금 피아니스트로서 그를 떠올리는 사람은 적지만, 사람이 있는 곳이면 가끔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스스럼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즉흥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초기작으로 수년 동안 공들여 작곡한 '12개의 스페인 무곡'이 널리 인정받으며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그라나도스는 1898년 오페라 '마리아 델 카르멘'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이즈음 안팔로갈 이란 여성과 결혼하는 등 성공적인 청년기 시절을 마무리합니다.

1900년대 초 '아카데미아 그라나도스'를 세워 많은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했으며, 종종 파리에서 연주회를 열어 큰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16년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의 오페라 《고예스카스》 초연 성공 후 귀향길에 비극이 찾아옵니다. 영불해협을 건널 때 탑승한 서섹스 호가 독일 잠수함의 무차별적인 해상공격을 받아 침몰했고, 그라나도스는 1916년 3월 24일 48세의 나이로 부인과 함께 사망했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스페인 음악계에 큰 손실이었으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스페인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예스카스

그라나도스의 피아노곡은 현재 약 100여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민족주의(Nationalistic), 낭만주의(Romantic), 고야풍(Goyesque)의 3개 작품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 시기(1887-1902)에는 페드렐에게서 작곡을 배우며 얻게 되는 많은 민족주의적 영향을 작품에 나타냈습니다. 대표작인 「스페인 무곡집(12 Spanish Dances)」은 그라나도스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데뷔작과도 같은 것으로, 인생의 봄을 노래한 듯한 민족주의 정서가 흠뻑 배어있는 주옥같은 작품입니다. 이 곡은 모음집 4권으로 구성되어 모두 12개의 춤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Andaluza'는 이 춤곡들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기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악기용으로 편곡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기(1903-1908)에는 민속적인 소재만을 사용하여 작곡하였던 시기를 지나 민속적인 요소와 자신만의 감성 또는 서정성을 결합하여 작곡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쇼팽과 슈만의 영향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시적인 정경(Escenas poeticas) 제1, 2집, 낭만적인 정경(Escenas romanticas), 젊은 날의 이야기(Cuentos de las juventud) 등이 작곡되었습니다. 그라나도스의 섬세한 작품 경향은 그의 성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는 정형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가로서 레슨 중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즉흥 피아노 연주를 하여 사람들을 놀래키고 항상 그만의 환상 속에서 황홀한 연주를 했습니다.

고야풍 시기(1909-1913)는 그라나도스의 가장 절정의 시기로서 낭만적인 악상과 스페인 고유의 민족적인 특성이 융합된 새로운 음악어법이 창출되는 완성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에스파냐의 화가인 고야(Francisco Gya y Lucientes, 1746-1828)에게서 영향을 받아 작곡되었습니다. 대표작 《고예스카스》는 마드리드의 심장과 기타의 음색효과 그리고 민속음악의 리듬이 잘 나타나 있으며, 지푸라기 인형(El Pelele)은 마드리드의 여자들이 담요의 끝을 잡고 그 위에 지푸라기 인형을 공중에 띄어 올리고 있는 정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피아노 모음곡인 고예스카스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가 상연되었을 때 폐막 장면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라나도스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그는 스페인의 민중악기인 기타의 음향을 피아노로 묘사하는 테크닉으로 스페인 민족음악에 새로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기타음향을 묘사한 작곡 기법은 훗날 많은 스페인의 민족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에 민속적 소재로 사용되었고, 나아가 다른 나라 작곡가들이 스페인적인 색채감과 분위기를 나타내려 할 때 가장 즐겨 쓰는 어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안달루시아 지방 음악을 즐겨 작품 속에 많이 반영했는데, 이 지방의 민속음악 및 무도를 총칭한 플라멩고의 종류 중 칸테혼도(Cante Jondo)의 선율적 특징이 특히 빈번히 나타납니다.

그라나도스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스페인특유의 정열보다는 인상주의적이고 낭만적인 특성이 눈에 띄며,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소품곡 형식의 작품이 다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와 동시대 스페인의 음악가들과 차별되는 그라나도스만의 음악적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민족적 색채가 거칠게 드러나기보다 섬세한 감정과 함께 녹아 있으며, 춤의 리듬과 노래 같은 선율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는 낭만적인 서정과 인간적인 고백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특히 그라나도스의 음악은 화려한 민족주의적 선언보다 개인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오며, 스페인적 정서가 외적인 색채가 아니라 내면의 언어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라나도스는 19세기 이후 인상주의를 비롯한 원시주의, 표현주의가 성행하는 가운데서도 꿋꿋이 민족주의적 작품을 많이 작곡했으며, 알베니스와 함께 스페인의 근대파 음악가의 선두에 위치하며 스페인음악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커다란 공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주관적 접근방식은 그로 하여금 실제 스페인주의(Hispanicism)가 안고 있는 한계를 초월하게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작품들은 스페인 음악의 정수로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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