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아르튜니안의 트럼펫 협주곡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화려한 기교의 곡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서야 이 곡이 왜 이토록 극적이고 감정적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아르튜니안은 1920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태어나 소비에트 체제 안에서 음악 교육을 받았고, 모스크바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자이자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의 색채와 러시아 낭만주의 전통이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보여줍니다. 특히 트럼펫 협주곡은 1950년 작곡된 작품으로, 단악장 구조 안에 전쟁의 비극과 영웅적 서사를 담아낸 20세기 관악 협주곡의 중요한 레퍼토리입니다.
작곡 배경
아르튜니안은 원래 절친한 친구인 트럼펫 연주자 바라타사리안을 위해 협주곡을 작곡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43년 소련수호전쟁 중에 친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작곡가는 원래 구상했던 작품을 접고, 전쟁의 참혹함과 친구를 향한 애도를 담은 새로운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곡이 바로 이 트럼펫 협주곡 A♭장조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기교 과시곡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제 연주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서주 부분의 B♭ 프리지안 모드로 시작하는 멜로디는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 특유의 애수를 담고 있고, 이어지는 행진곡 리듬은 전선으로 향하는 군인들의 발걸음을 연상시킵니다. 초반 카덴차를 연주할 때 단지 높은 음을 정확하게 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이 곡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연주하면서 친구를 잃은 작곡가의 심정을 떠올리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니 자연스럽게 더 힘차고 당당한 음색이 나왔습니다.
작품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지만 재현부에서 제2주제를 생략하고 카덴차로 대체하는 독특한 구조를 보입니다. 이는 고전 소나타 형식의 원칙을 깬 것인데, 오히려 이 덕분에 곡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총 451마디, 약 17분 길이의 이 단악장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구조 분석
아르튜니안의 음악적 정체성은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과 러시아 음악 전통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서주 부분에서 사용된 B♭ 프리지안 모드는 서양 장단조 체계와는 다른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냅니다. 증2도 음정이 자주 등장하고, 이는 중동과 동유럽 음악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연습할 때 음정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을 몇 곡 들어보고 나서야 이 선법이 왜 이렇게 쓰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시부는 A♭장조로 시작해서 E♭장조로 조바꿈을 하며 전개되는데, 동기 1과 동기 2가 반주 성부와 독주 성부 사이를 오가며 교차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처럼 다양한 악기를 통해 주제를 변주하는 러시아 음악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2도 진행을 많이 사용하는 선율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제1주제와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러시아 음악 전통에서 2도 진행은 고대 의식 음악에서 유래된 것으로, 좁은 음역 안에서 애절하고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에피소드 부분에서 트럼펫 독주자는 컵 뮤트를 사용하는데, 이는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인 두둑의 음색을 모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둑은 살구나무로 만든 더블리드 악기로, 부드럽고 비음이 섞인 음색이 특징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소심하게 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뮤트를 끼우면 소리가 작아질까 봐 조심스럽게 부는 연주자들이 많은데, 오히려 호흡을 더 내뱉고 멜로디 라인만 생각하며 노래하듯 불어야 청중에게 분명하게 전달됩니다.
연주 방법
이 곡을 연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중간 휴식 없이 17분을 하나의 큰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전부는 네 단락으로 나뉘고, 각 단락마다 다른 조성과 분위기를 오가며 음악이 전개됩니다. 특히 세 번째 단락은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인데, 여기서 템포가 느슨해지면 전체 흐름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도 오케스트라 반주를 집중해서 듣고, 그 안에서 제 멜로디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며 연주했습니다.
재현부에 진입하면 제1주제가 다시 등장하는데, 제시부와 거의 동일한 멜로디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전부를 거쳐왔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훨씬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제2주제 대신 카덴차가 나오는 부분에서 연주자는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카덴차는 작곡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트럼펫 연주자 독쉬체르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인데, 이후 여러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어 연주하고 있습니다.
갤롭 리듬과 행진곡 리듬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곡의 특징입니다. 갤롭은 독일에서 유래한 2박자 리듬으로 '나는 듯이 달리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행진곡 리듬은 군대의 발걸음을 연상시킵니다. 마디 352부터 355까지는 동일한 속도의 8분음표로 진행되는데, 중간에 반음계가 삽입되면서 적이 침입하는 듯한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이런 부분을 연주할 때는 리듬의 정확성보다 그 안에 담긴 극적인 긴장감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 간주가 나올 때도 그냥 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부분에서 다음 진입을 준비하느라 집중을 놓쳤는데, 나중에는 반주를 함께 느끼며 음악 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음 파트로 진입할 수 있었고, 전체적인 흐름도 훨씬 매끄러워졌습니다.
아르튜니안의 트럼펫 협주곡은 기교와 감성, 전통과 현대, 민족성과 보편성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곡을 연주하면서 저는 단순히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을 넘어서, 작곡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전쟁으로 친구를 잃은 작곡가의 슬픔, 아르메니아 민족의 정체성, 그리고 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 이 모든 것이 17분이라는 시간 안에 응축되어 있는 이 협주곡은,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참고: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