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올라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월턴(William Walton)의 비올라 협주곡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 이 곡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악보를 펼치자마자 "이걸 어떻게 연주하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1928년 작곡된 이 협주곡은 비올라 레퍼토리 중에서도 기술적 난이도와 음악적 깊이가 최상급에 속하며, 역대 최고의 비올라 연주자 프림로즈(William Primrose)조차 "다섯 번째 연주회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연주했다고 느꼈다"고 고백할 만큼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곡은 비올라라는 악기의 매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걸작이기도 합니다.
배경
윌리엄 월턴은 1902년 영국 랭카셔에서 태어나, 엘가(Edward Elgar) 이후 영국 음악계를 이끈 3대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12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918년 시트웰(Sitwell) 남매와의 만남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시트웰 남매는 조지 시트웰 경의 자녀들로, 당시 영국 예술계의 권위주의와 속물주의에 반기를 들던 진보적 예술가 집단이었습니다. 월턴은 이들의 후원 아래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누릴 수 있었고, 1921년 발표한 「파사드(Façade)」로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별명과 함께 음악계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올라 협주곡은 당대 저명한 지휘자 비첨 경(Sir Thomas Beecham)의 제안으로 비올리스트 라이오넬 터티스(Lionel Tertis)를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여기서 '협주곡(Concerto)'이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듯 주고받으며 음악을 전개하는 형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독주자가 주인공이고 오케스트라가 조연 겸 대화 상대인 구조입니다. 월턴은 이 형식 안에서 비올라의 중음역대가 가진 따뜻하면서도 우울한 음색을 극대화했고, 변칙적인 리듬과 '시니컬한 우울'이 담긴 선율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음악학자 도널드 비트 경은 이 협주곡을 두고 "현대가 낳은 협주곡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출처: 영국국립도서관).
저는 이 곡을 처음 분석하면서 월턴이 왜 비올라라는 악기를 선택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첼로보다 더 절제된 슬픔을 담아낼 수 있는 악기가 바로 비올라였기 때문입니다.
작품 분석
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가까운 구조로, 제시부-발전부-재현부로 명확히 나뉩니다. 여기서 '소나타 형식(Sonata Form)'이란 두 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이를 발전시킨 뒤 다시 재현하는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 구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1악장의 가장 큰 특징은 a단조와 A장조가 공존하는 '복조성(Polytonality)'입니다. 복조성이란 두 개 이상의 조성이 동시에 진행되는 기법으로, 듣는 이에게 불안정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줍니다. 예를 들어 독주 비올라가 a단조로 주제를 연주할 때, 반주부에서 C음(A장조의 3음)이 충돌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실제로 이 악장을 연습하면서 가장 까다로웠던 부분은 제1주제의 9도 도약이었습니다. 9도 도약이란 한 음에서 한 옥타브 위의 2도 음으로 뛰는 것인데, 비올라의 큰 몸통 때문에 손목과 팔꿈치 각도를 순식간에 조정해야 합니다. 이때 소리가 끊기거나 음색이 거칠어지기 쉬운데, 저는 도약 직전에 손가락을 미리 준비 자세로 세팅하고, 올림활(Up-bow)로 접근해 소리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또한 높은 음역으로 갈수록 강한 음색이 되지 않도록 오른손 활의 압력을 줄이고, 왼손 손가락은 오히려 세게 눌러 울림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2주제는 병행 6도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월턴이 1악장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중요한 작곡 요소입니다. 병행 6도란 두 음이 6도 간격을 유지하며 함께 움직이는 화성 진행으로,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연주할 때 2, 3번 손가락으로 더블 스탑(두 줄 동시 연주)을 잡아 풍부한 비브라토를 지속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2악장은 빠른 템포(♩=144-152)의 론도 형식으로, 제1주제(A)와 제2주제(B)가 교대로 나타나며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여기서 '론도 형식(Rondo Form)'이란 주요 주제가 반복적으로 돌아오면서 중간에 대조되는 주제들이 삽입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A-B-A-C-A처럼 후렴구가 계속 돌아오는 형식입니다. 제1주제는 연속되는 완전 4도 도약과 보조음(Auxiliary Note)을 특징으로 하며,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연습할 때 손가락이 꼬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조음이란 화음에 속하지 않는 음이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화음 안으로 돌아오는 장식음으로, 마치 대화 중에 곁가지를 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활의 분배가 이 악장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저는 초반에 활을 너무 많이 써서 뒷부분에서 소리가 약해지는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57마디부터 등장하는 현의 교차 부분은 각 박자의 첫 음이 선율이므로, 나머지 세 음보다 길고 강하게 연주해야 합니다. 이때 오른팔 팔꿈치의 빠른 움직임이 관건인데, 현을 넘나들 때 팔꿈치가 먼저 움직여야 손목과 활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왼손은 4번 손가락을 적극 활용해 포지션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74마디부터는 연속되는 코드(화음) 연주가 나오는데, 활 밑부분에서 각도를 꺾어 세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밑활에서 먼저 아래 한 음을 소리 낸 후, 악기의 자연스러운 울림을 이용해 위의 두세 음을 빠르게 덧대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영국 왕립음악대학(Royal Academy of Music)의 비올라 교수법 자료에서도 권장하는 주법입니다(출처: 영국왕립음악대학).
3악장은 다시 소나타 형식으로 돌아오며, 1·2악장에 비해 조성 음악의 색채가 강합니다. 제1주제는 완전 5도 음열로 배열되어 있어 2악장과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A장조-E장조-B장조로 완전 5도씩 상승하는 조성 배열을 통해 구조적 안정감을 줍니다. 여기서 '완전 5도(Perfect Fifth)'란 도-솔처럼 가장 안정적이고 협화로운 음정 관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가장 듣기 편하고 조화로운 음정입니다.
저는 이 악장에서 제시와 응답 구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먼저 제시하면 독주 비올라가 응답하고, 다시 오케스트라가 받아치는 방식이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실제 연주 시에는 오케스트라의 프레이징을 정확히 듣고, 같은 호흡으로 따라 들어가야 자연스러운 앙상블이 완성됩니다.
기술적으로는 267마디부터의 종결부가 가장 도전적입니다. A음에서 시작하는 서정적 선율은 폭넓고 빠른 비브라토가 필수인데, 저는 2포지션에서 시작해 손목의 흔들림을 크게 가져가는 방식으로 비극적 정서를 표현했습니다. 이어지는 하행 선율에서는 D현과 G현의 굵은 음색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 끝이 아닌 넓은 부분으로 지판을 눌렀고, 이것이 곡의 마무리에 깊이를 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300마디에서는 술 타스토(Sul Tasto, 지판 위에서 활을 긋는 주법)로 소리를 점점 사라지게 만들며, 활 교체 지점이 티 나지 않도록 세심한 컨트롤이 요구됩니다.
실전 조언
월턴의 비올라 협주곡을 준비하는 연주자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핑거링(운지법) 최적화: 음악적 표현과 기술적 편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비브라토가 풍부해야 하는 음은 2, 3번 손가락으로, 빠른 패시지는 4번 손가락을 적극 활용해 포지션 이동을 줄이세요.
- 보잉(활 사용법) 계획: 긴 프레이즈에서는 올림활 시작을 고려하고, 강세가 필요한 음은 내림활로 배치하세요. 2악장처럼 빠른 악장에서는 활 중간 위치를 유지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 쉬프팅(포지션 이동) 활용: 같은 음이라도 포지션을 바꾸면 음색이 달라집니다. 서정적 표현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높은 포지션으로 이동해 A현의 밝은 음색을 활용하세요.
이 곡은 단순히 음표를 정확히 연주하는 것을 넘어, 월턴이 의도한 '시니컬한 우울'과 '변칙적 리듬의 에너지'를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고난도 작품입니다. 저 역시 여러 번의 연주회를 거치며 매번 새로운 해석을 발견했고, 프림로즈의 말처럼 이 곡은 연주할 때마다 성장하게 만드는 레퍼토리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월턴의 비올라 협주곡은 비올라 전공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평생의 동반자가 될 만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기술적 난이도에 압도당할 수 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분석하고 체화하다 보면 어느새 이 곡이 주는 음악적 희열에 빠져들게 됩니다. 저는 이 곡을 통해 비올라라는 악기가 단순히 오케스트라의 내성부를 채우는 역할을 넘어, 독주 악기로서 얼마나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한 연습과 음악적 성찰을 통해 월턴 협주곡만의 매력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