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유럽은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음악계에서는 18세기와 19세기를 지배하던 조성 체계가 반음계주의의 확산으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통적 조성의 원리를 넘어선 무조성 음악이 등장했고, 그 중심에는 Claude Achille Debussy가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새로운 기법의 실험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감각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드뷔시
드뷔시는 초기 작곡 활동에서 바그너의 의 화성 진행과 관현악법을 답습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그러했듯이, 드뷔시 역시 바그너의 영향권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들과 동양적(Orientalism) 정서를 접하면서 바그너리즘(Wagnerism)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복잡함(Complexity), 무거움, 장대함으로 대변되는 독일주의 음악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였습니다. 특히 Modest Petrovich Musorgsky(1839~1881)의 반낭만주의적 경향은 드뷔시에게 중요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드뷔시는 스스로 무소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를 듣는 것과 자신의 <펠레아스(Pelias)와 멜리장드(Melisande)>를 듣는 것이 같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드뷔시가 폰 메크 부인의 집에 피아노 반주자로 초빙되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는 러시아 작곡가들이 독일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 개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자신과 프랑스 음악 역시 독일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작품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elude to The Afternoon of a Faun 1894>은 이러한 주체성을 반영한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성(simplicity), 명료함(clarity), 투명함(transparency)을 통해 프랑스적 미(美)를 표현하며, 조성에 기초한 화성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선율 중심의 작곡 기법으로 전통 조성음악의 관습에서 벗어났습니다.
조성 탈피
드뷔시의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화성의 비기능적 사용입니다. 그는 11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기존의 모든 법칙을 파괴하는 비전통적인 화성으로 구습 타파주의자라 불렸습니다. 그의 화성은 기능적 진행이 아닌 순수한 색채적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상주의 미술이 명확한 선(線)이나 선명한 색채보다 순간의 느낌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상주의 미술은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들은 아틀리에(atelier) 미술을 거부하고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드뷔시의 음악 역시 선율이나 화성의 흐름이 분명하지 않고 형식이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인상주의 회화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로 불리는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는 음악가란 '낮이나 밤, 하늘과 땅의 매력을 알아보고 그 분위기를 깨울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며, 음악은 자연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기에 인상주의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외적 인상을 내적 표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칩니다.
상징주의 문학 역시 드뷔시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Charles-Pierre Baudelaire
, Stephane Mallarme(1842~1898) 등 상징주의 시인들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내용을 거부하고 시적 정서를 추구했습니다. 이들은 단어의 의미보다 음감(音感)이나 뉘앙스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는 드뷔시가 화성을 기능적 진행이 아닌 색채와 분위기로 사용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감각의 확장
드뷔시의 음악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암시하고 여운을 남깁니다. 이는 낭만주의 음악이 감정의 고조와 폭발적 클라이맥스, 급격한 셈여림의 대비를 통해 감정을 주저 없이 드러낸 것과 대조됩니다. Aaron Copland는 드뷔시를 '내면적인 낭만주의자'라고 칭했는데, 이는 그의 음악이 낭만주의적 취향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사랑, 표제음악에의 치중, 음에 의한 묘사와 자연숭배, 서정주의에의 몰두 등 낭만주의 운동의 기본적 영향을 답습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표현의 정도에 있었습니다. 드뷔시는 과장된 몸짓을 피하고 꿈꾸는 듯한 감각의 세계로 청중을 이끌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드뷔시의 음악에서 선율과 화성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색채와 분위기가 앞섭니다. 감정은 서사로 발전하기보다 스쳐 지나가는 감각으로 남아,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을 해석하기보다 느끼도록 만듭니다. 이는 단순히 기존 음악 문법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가질 수 있는 감상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20세기 초 음악의 목적은 청중의 귀를 혼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한계를 넓혀 새로운 차원을 열고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뷔시는 풍부해진 음악적 언어보다 시대에 맞는 객관적이고 새로운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화성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화성의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며,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같은 작곡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 드뷔시의 음악은 조성 체계의 와해와 감각의 확장을 통해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기법의 과시가 아니라 듣는 감각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철학적 시도였으며, 음악이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고 감각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변화를 넘어, 예술이 인간의 감각과 맺는 관계 자체를 재정의한 혁명이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최민정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