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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음악의 탄생 (시대적 배경, 쇤베르크, 무조성의 의미)

by 진헤 2026. 2. 4.

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가는 세기 전환기는 유럽 사회가 극심한 불안과 갈등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탄생한 표현주의 음악은 단순히 새로운 음악 양식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고백하는 예술적 언어였습니다. 아놀드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전개된 표현주의 음악은 조성 체계를 해체하며 인간 내면의 불안과 분열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20세기 음악사에 혁명적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시대적 배경

표현주의 음악은 1905년부터 1920년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을 반영합니다. 1870년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유럽 전역에서 민족 독립운동이 자극되었고, 산업화는 경제 발전과 동시에 부의 불평등과 계급 간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1857년부터 주기적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은 열강들의 제국주의 정책을 부추겼고, 식민지 쟁탈전은 국제적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890년대부터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은 다른 열강의 견제를 받으며 사회적·정치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군국주의와 극우민족주의는 예술에까지 경직된 사고를 강요했습니다. 예술가들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으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을 경험해야 했고, 결국 사회와 이념에 반발하여 새로운 표현 수단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표현주의 예술가들이 추구한 것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정서적 긴장과 내적 갈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날카롭게 신경을 자극하는 불협화음이야말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주며,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하며,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음악을 세기 전환기의 불안과 갈등을 가장 잘 반영한 음악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표현주의 음악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이어지는 파국 직전의 소란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정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조성과 안정감을 해체한 음악은 듣는 이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인간 내면의 불안과 분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쇤베르크의 혁신

아놀드 쇤베르크는 1874년 헝가리계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에 전문 음악가가 없었던 그는 8살 때 바이올린 레슨으로 공식적인 음악 교육을 시작했지만, 1889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5년간 은행 점원으로 일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친구 오스카 아들러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의 도움으로 음악 공부를 계속한 쇤베르크는 1898년 현악 4중주로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기 쇤베르크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의 조성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 Op. 4, 1899)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und Melisande, Op. 5, 1903)는 각각 바그너와 말러,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쇤베르크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표현미학을 더욱 심화시켰고, 20세기 초의 어두운 현실과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전달하기 위해 기존의 조성 체계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추구했습니다.
1907년 말러가 미국으로 떠나고, 그의 아내와 미술 스승인 리하르트 게르스틀 사이의 불륜 사건이 발생하면서 쇤베르크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후 그의 음악은 더욱 불협화음적으로 변화했고, 마침내 1908년 완전히 무조성에 도달했습니다. 쇤베르크는 "조성은 영원한 법칙이 아니며 음악 형식의 성취를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며 조성 체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바그너와 후기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극단적인 반음계와 복잡한 전조를 사용하면서도 느슨한 조성감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쇤베르크는 조성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쇤베르크가 원하는 것은 절망적이고 파괴적인 상황으로 인해 받은 깊은 충격과 이로 인한 감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낭만주의처럼 이상 세계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의 충격을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되거나 연속성을 가지는 음악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과거 미학의 모든 장벽들을 부수었다고 의식하는 길에 들어섰다"라고 말하며 전통 음악 규칙 안에서 해석될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조성의 의미

표현주의 음악 이후 조성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음악사에서는 1909년부터 1923년까지를 무조성의 시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는 표현주의 작품이 활발하게 작곡되었던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벨라 바르토크, 아르투르 오네게르, 파울 힌데미트 등의 작곡가들이 부분적으로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작곡하였고, 표현주의가 아니더라도 음악가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무조성을 추구했습니다.
표현주의 음악은 조성뿐 아니라 여러 음악 양식의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무조성의 시기 동안 작곡가들은 조성의 해체 외에도 리듬의 해체, 형식의 해체 경향을 보였는데, 이것은 개인의 주관적 표현을 위해 음악 전통을 무시하고 전통 질서를 배제하는 표현주의 음악관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표현주의 음악은 20세기 초의 새로운 음악 경향을 주도했습니다.
쇤베르크는 1923년 무조성을 체계화한 12음기법(Twelve-tone technique)과 음렬주의 음악(Serial music)을 창안했습니다. 12음기법은 12개의 반음을 한 번씩 나열하여 조성이 느껴지지 않는 열(음렬)을 만들고, 이를 원형(Original), 전위형(Inversion), 역행형(Retrograde), 역행전위형(Retrograde Inversion)으로 변형하여 악곡의 수평적, 수직적 기본 단위로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을 조성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체계화된 무조성이라 여겼고, 음렬을 사용하여 전통 음악처럼 악곡의 완벽한 통일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안톤 베베른의 12음기법은 모든 음악 재료가 엄격히 통제되고 압축된 형태의 철저한 무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1950년대 이후 음 외에도 셈여림, 리듬, 악상기호, 음색 등 음악의 모든 재료를 열로 만들어 완벽하게 통제하는 총렬주의 음악(Total-serial music)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총렬주의 이후의 전자 음악, 음향 음악, 음색 음악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쇤베르크의 연가곡 《공중정원의 책》이 음악에서 조성을 무너뜨린 사건은 물리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아이작 뉴턴의 거대우주를 무너뜨리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아름다움을 거부하기보다는, 기존의 아름다움이 담아내지 못했던 감정의 영역을 음악으로 끌어올린 시도였습니다. 표현주의 음악은 최초의 무조성 음악이자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음악 중 하나로서, 무조성의 시대를 주도하면서 동시대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20세기 음악을 주도한 아방가르드 음악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음악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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