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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신고전주의, 연주법, 작곡기법)

by 진헤 2026. 2. 26.

러시아배경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처음 연주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뭘까요? 페달을 밟았다가는 악보가 요구하는 날카로운 타악기적 색채가 뭉개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화려한 낭만주의 레퍼토리에 익숙했던 제게 이 곡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요구했습니다. 차갑고 절제된 긴장감 속에서도 갑자기 서늘하게 빛나는 서정적 선율이 등장하는 대비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 균형을 찾는 과정이 이 곡을 이해하는 핵심이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1943년 플루트 소나타로 이 작품을 먼저 완성했고, 이듬해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의 권유로 바이올린 버전으로 개작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 통치 아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요하던 시기였고, 초기 혁신적 작풍을 보이던 프로코피에프조차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선율과 고전적 형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틀 안에서도 그는 20세기 신고전주의 작곡가로서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신고전주의

20세기 초 유럽은 후기 낭만주의의 과도한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예술가들은 환상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려 했고, 음악에서는 객관적이고 간결한 형식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와 함께 이 흐름을 대표하는 작곡가였습니다.

신고전주의는 바로크와 고전 시대의 형식을 빌려오되, 확장된 조성과 불협화음으로 현대적 감각을 더하는 방식입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전형적인 4악장 소나타 형식을 따르지만, 1악장 소나타 형식 안에서 D장조 틀을 유지하면서도 빈번한 비화성음과 'wrong note' 기법으로 조성을 모호하게 만듭니다. 제가 이 곡을 연습하면서 느낀 건, 악보상으로는 명확한 D장조인데 귀로 들으면 계속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신고전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을 고전적, 현대적, 토카타적, 서정적, 그로테스크적 다섯 가지 특징으로 설명했습니다. 고전적 형식 안에서 현대적 화성을 쓰고,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는 토카타적 요소와 러시아 민요풍의 서정적 선율, 그리고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까지 한 곡에 모두 담아냈습니다. 실제로 2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예상치 못한 박자에 악센트가 튀어나오고, 3악장에서는 갑자기 차분한 서정성이 흐르다가 4악장에서 다시 격렬한 리듬으로 폭발합니다.

연주법

이 곡을 여러 번 연주하면서 깨달은 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적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곡이 밋밋해진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타악기적 패시지가 나올 때 페달을 적게 써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페달에 익숙한 피아니스트라면 본능적으로 페달을 밟게 되는데, 프로코피에프는 건조하고 명확한 터치를 요구합니다. 1악장 제시부 경과구에서 바이올린의 16분음표와 피아노 왼손의 16분음표가 함께 나올 때, 페달을 과하게 쓰면 리듬이 뭉개지고 생동감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그로테스크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충분히 노래해야 합니다. 3악장은 이 곡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바이올린이 F장조에서 밝은 서정적 선율을 넓은 도약으로 제시할 때, 피아노는 8분음표 반주 음형으로 화성을 뒷받침하는데, 이때 피아노가 너무 강하면 바이올린 선율이 묻힙니다. 저는 처음엔 피아노 파트를 너무 치중해서 연주했다가,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피아노 소리에 제 소리가 안 들려요"라는 피드백을 받고 밸런스를 조정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부분도 신경 써야 합니다. 2악장에서 모티브가 두 악기 사이를 오가는데, 각자 주제를 연주할 때는 주도권을 쥐고, 반주로 돌아갈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게 중요합니다. 4악장 코다에서 모티브A가 푸가의 스트레토 기법처럼 겹쳐 나올 때는 두 악기가 동등한 무게로 경쟁하듯 밀어붙여야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살아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호흡을 여러 번 맞춰봐야 자연스러워집니다.

작곡기법

프로코피에프는 고전 형식을 따르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2악장은 전형적인 느린 악장 대신 스케르초를 배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전 소나타는 1악장 빠르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미뉴에트나 스케르초, 4악장 빠르게 진행되는데, 프로코피에프는 2악장을 스케르초로, 3악장을 느린 단순3부 형식으로 배치해 구조를 비틀었습니다. 이게 곡 전체의 흐름을 독특하게 만듭니다.

화성적으로는 기능 화성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입니다. 1악장 제시부에서 D장조 으뜸화음으로 시작하지만, 1마디 세 번째 박에서 G, E♭, F♯, C♮의 화성이 등장해 조성을 흔듭니다. 명확한 조성 안에서도 틀린 음처럼 들리는 비화성음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게 프로코피에프의 현대적 어법입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이 불협화음들을 얼마나 날카롭게 표현하느냐가 곡의 성격을 좌우합니다.

리듬도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헤미올라, 당김음, 불규칙한 슬러, 예상치 못한 악센트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2악장에서 3/4박자가 2/4박자처럼 들리게 만드는 리듬 배치나, 4악장에서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구조 등은 연주자가 박자감을 정확히 유지하지 않으면 청중에게 혼란을 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분은 메트로놈으로 철저히 연습한 뒤, 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는 게 최선입니다.

바이올린 주법도 다채롭습니다. 피치카토, 하모닉스, 더블 스토핑이 자주 등장해 음색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4악장 재현부에서 바이올린이 더블 스토핑으로 주제를 연주할 때 피아노가 함께 8도 병행으로 받쳐주면 화려한 효과가 배가됩니다. 이런 디테일을 살리려면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서로의 파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20세기 듀오 소나타 레퍼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고전 형식과 현대 어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타악기적 요소와 서정성이 대비를 이루며, 그로테스크한 유머와 진지한 긴장감이 공존합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까다롭지만, 그만큼 음악적으로 탐구할 여지가 많은 곡입니다.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프로코피에프의 작곡 기법을 이해하고, 두 악기 간의 밸런스를 세심하게 조율하며, 무엇보다 절제된 긴장감 속에서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만약 이 곡을 처음 접한다면, 우선 각 악장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해 연습하고, 파트너와 충분히 호흡을 맞춰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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