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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음기법의 탄생 배경 (조성 해체, 쇤베르크 철학, 음렬 조직)

by 진헤 2026. 2. 2.

악보

 

20세기 초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는 12음기법의 등장입니다. 쇤베르크에 의해 정립된 이 작곡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조성 붕괴 이후 음악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는 절박한 시도였습니다. 이 기법은 감정의 즉각적 분출 대신 엄격한 구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한 작곡가들의 고민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조성 해체

조성은 서양 음악에서 수백 년간 지배적인 조직 원리였습니다. 12개의 평균율 음들을 으뜸음이라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배열하고, 이 으뜸음이 마치 자석처럼 나머지 11개의 음들을 끌어당기며 수직적·수평적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수평적 차원에서는 7개의 음이 장조와 단조 스케일을 이루었고, 수직적 차원에서는 화음들이 으뜸음과의 관계에 따라 조성적 의미를 부여받았습니다. 이러한 조성 체계는 음악의 구조, 형식, 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에너지 장이자 중심축으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특히 바그너 이후 음악은 점차 조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반음계주의의 침투로 스케일 밖의 음들이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으뜸음의 중심성은 흐려졌고, 12개 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확장된 조성' 개념이 등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마저도 구조적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드뷔시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음악에서는 장화음과 단화음이 여전히 사용되었지만, 이들은 조성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색채적 변화를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조성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조성 구조가 완전히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불협화음의 해방'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1911년 화성학 저서에서 불협화음을 "더 멀리 떨어진 협화음, 즉 기본음으로부터 더 높은 차수의 배음"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를 통해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이분법을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모든 음 사이의 관계를 '가까운 협화음'과 '먼 협화음'이라는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통합하려 했습니다. 음악사적으로도 3도가 협화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중세시기부터 감7화음이나 증4화음이 해결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 19세기 후반까지, 불협화음은 점진적으로 규범에서 벗어나 자율적 존재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쇤베르크는 불협화음과 협화음을 구분짓는 기준이 미학적 가치가 아니라 인지 가능성이라고 주장하며, 조성 중심 없이도 음악을 조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단순한 미적 반란이 아니라 지각의 확장이었으며, 12음기법 성립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쇤베르크의 철학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한 '음악적 공간'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시간의 예술이 아니라 공간적 사유의 예술이었습니다. 작곡가가 작품을 떠올릴 때, 그는 시간 안에서가 아니라 공간 안에서 전체를 구상하게 됩니다. 악보는 이러한 공간적 구상을 시간의 흐름 속에 펼쳐낸 결과물이며, 청자는 음악을 시간 속에서 순차적으로 듣지만 연주가 끝난 후 전체를 되짚으며 다시 공간적 직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은 음악의 한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순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뒤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고, 심지어 아직 연주되지 않은 미래의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쇤베르크는 또한 하나의 음이 그보다 완전5도 아래 있는 음과 본질적인 연결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낮은 음은 높은 음들의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리학적 배음 구조에 기반한 인식으로, 우리는 한 음을 들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 배음들을 함께 듣는 '정신의 귀'를 갖고 있다는 철학적 직관에서 비롯됩니다. 옥타브나 장3화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의 음을 수직적(동시적)으로도 제시할 수 있고 수평적(연속적)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장3화음을 동시에 울릴 수도 있고 순차적으로 연주하여 선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전환, 또는 그 반대의 작곡적 관점 전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사유를 '마방진' 개념으로 심화시켰습니다. 마방진에서는 같은 글자가 수평과 수직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지듯이, 음악에서도 하나의 재료가 선율과 화성,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같은 의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성 음악에서는 조성이 이러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유지해 주었지만, 조성이 사라진 이후에는 이 연결 기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해야 했습니다.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이 조성과 마찬가지로 작품 전체의 창조적 구상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해야 하며, 이 구조 안에서 모든 음들이 하나의 목적과 질서 안에서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이는 무조 이후의 혼란을 억지로 정리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규칙을 부여한 선택이었습니다. 감정의 즉각적 분출 대신 엄격한 질서를 통해 표현의 폭을 지키려 한 절박한 태도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음렬 조직

조성이 무너지면서 작곡가들은 음악을 조직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조성 시기에는 화성 진행이 형식과 구조를 책임지는 중심 역할을 했지만, 무조 음악에서는 모티브와 주제적 맥락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작곡가들은 점차 12개의 음 전부를 하나의 주제나 선율 내에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12개 모든 음이 반복 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나타나고, 살로메의 '엘렉트라'에서는 조성을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선율과 화성이 사용되었습니다. 막스 레거 역시 후기 작품들에서 9음, 10음, 11음, 그리고 완전한 12음 주제를 다루며 점점 조성에서 벗어났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선율들이 의식적인 12음기법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작곡가들의 직관과 상상력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정점에서 탄생했습니다. 작품번호 23번 '다섯 개의 피아노곡'과 작품번호 24번 '세레나데'는 완전한 12음기법으로 작곡된 작품번호 25번 이전의 과도기적 작품들로, 12음 악장과 무조성 악장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쇤베르크가 원리나 체계를 절대화하지 않고 음악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새로운 기법을 만들기 위해 음악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음악적 필요와 상상력이 새로운 기법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베르크가 말했듯이 "12음기법은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고 발견되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12음기법의 핵심은 음렬(tone row)입니다. 음렬은 12개의 음을 특정 순서로 배열한 것으로, 작품 전체의 구조를 통일하고 서로 다른 부분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음렬은 단순히 한 번 사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형, 역행형, 전위형, 역행전위형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작품 전체에 걸쳐 반복됩니다. 이는 조성이 으뜸음을 중심으로 음들을 조직했던 것처럼, 음렬이 새로운 질서의 중심축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조성과 달리 음렬은 특정 음에 대한 종속 관계가 아니라 12개 음의 동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모든 음은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음렬의 순서와 간격에 따라서만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화성적 구성과 대위법적 구성을 모두 포괄할 수 있었고, 쇤베르크는 이 둘을 하나의 완성도 높은 작곡 언어로 통합시켰습니다. 대위법적 전통에서 비롯되었지만 엄격한 규칙에 갇히지 않고 현대적 의미에서 대위법과 화성의 융합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20세기 초 작곡가들이 대위법적 기법과 폴리포니에 주목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조성을 통해서는 더 이상 음악을 조직할 수 없게 되자, 여러 성부들이 서로 얽히고 반응하는 선율적 상호작용을 통해 음악적 일관성과 구조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12음기법은 이러한 대위법적 사고와 화성적 사고를 통합하여, 조성이 제공하던 구조적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원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음악을 다시 통제 가능한 언어로 만들고자 한 작곡가의 고민과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며, 이는 차갑기보다는 절박한 태도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12음기법의 탄생은 조성 붕괴 이후 음악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는 절박한 시도였으며,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규칙을 부여한 선택이었습니다. 쇤베르크의 철학적 사유와 음악적 공간 개념, 그리고 음렬 조직의 실천적 전개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음악사의 필연적 흐름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작곡가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EugeneON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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