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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음악의 부정과 탄생 (새로운 음악, 선율의 변화, 존 케이지)

by 진헤 2026. 2. 25.

유럽 배경

 

20세기 서양음악은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음악적 연속성을 위협할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선율, 화성, 리듬 체계가 붕괴되고, 소음과 침묵까지 음악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특히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기존 음악 개념에 대한 전면적 재고를 요구했습니다.

새로운 음악

오희숙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세기 음악은 서양음악사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양식 변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전 시대의 변화들이 기존 체계 내에서의 발전이었다면, 20세기의 변화는 음악의 정의 자체를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악기 대신 기계가 사용되고, 음 대신 소음이 전면에 등장하며, 전통 화성은 해체되었습니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 12음 기법, 스트라빈스키의 구조주의적 접근, 그리고 케이지의 실험적 작품들은 이러한 변화의 선봉에 섰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반 청중은 '음악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쏟아냈지만, 이는 단순히 형태적 거부감을 넘어 음악의 본질에 대한 혼란을 반영한 것입니다. 힌데미트는 이를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강박'으로 진단하며, 진정한 예술적 진리를 잃어가는 시대를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음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흐름이 되었고, 예술의 자율성을 넘어 일상과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습니다. 객석의 기침 소리와 공기의 울림조차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작곡가의 통제를 벗어나 환경과 우연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음악관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불편하지만 사고의 틀을 깨는 시도였으며, 음악을 결과물이 아닌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혁명적 발상이었습니다.

선율의 변화

전통적으로 선율은 음악에서 언어의 역할을 담당하며, 작곡가와 청중 간의 소통 매개체였습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발전한 선율 체계는 '음으로 말한다'는 원리에 기초했으며, 모차르트의 선율처럼 천상의 노래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고 친근했습니다. 선율은 고른 음이 다양한 높이와 리듬으로 연속되며 명확한 음악적 어구를 형성했고,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화성과 리듬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조성이 붕괴되고 리듬 체계가 변화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선율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윤이상의 '중심음 법칙'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음과 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기존 선율 대신, 하나의 음 자체가 선율이 됩니다. 긴 음가를 가진 중심음은 비브라토나 트레몰로로 연주되며, 짧은 주변음들은 장식음처럼 표현됩니다. 윤이상은 "유럽 음악에서 음들의 연속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지만, 우리 음악에서는 음 그 자체가 이미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악보에서는 상성부의 음정들이 고르게 연결되며 명확한 선율 구조를 형성하지만, 윤이상 음악의 플루트 파트에서는 섬처럼 띄엄띄엄 배치된 긴 음정과 그 주변의 짧은 음들만 발견됩니다. 이는 선율 개념 자체의 근본적 재정의를 의미하며, 음악이 언어적 소통 매개에서 벗어나 음 자체의 존재론적 가치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서양음악의 형태적 공통점을 해체하며, 기존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존 케이지

191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존 케이지는 발명가 아버지 밑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키웠고, 쇤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으나 화성학에 대한 무관심으로 2년 만에 스승을 떠났습니다. 케이지의 관심은 '소음'에 있었으며, 그는 소음에 귀 기울이면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리페어드 피아노의 발명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케이지는 1936년 동양의 선사상에 감동받아 불교에 심취하게 되고, 1949년 '무에 관한 강연'과 '유에 관한 강연'을 통해 변화된 음악관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1950년 영문판으로 출판된 주역은 케이지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64괘의 괘사를 담은 주역은 동전이나 산가지를 던져 무작위로 얻는 점복 체계를 제공했고, 케이지는 이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선호에서 벗어난 음악을 작곡하고자 했습니다. 1951년 '주역음악'에서는 점괘로 얻은 무작위 숫자로 음높이, 음길이, 강약 등을 결정했으며, 이듬해에는 음높이와 소리를 모두 배제하고 음길이만을 정해 쓴 4분 33초를 발표했습니다.
1952년 8월 뉴욕 우드스톡의 매버릭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가 초연한 4분 33초는 악보에 'Tacet, For any instrument or instruments'라고만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30초의 1악장, 2분 23초의 2악장, 1분 40초의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연주 내내 무대 위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튜더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열며 각 악장을 구분했고, 팔짓으로 시작과 끝을 표현했습니다. 분실된 원본 악보는 튜더의 기억으로 재건되었고, 이후 출판된 악보들은 음악 악보라기보다 시간을 표시하는 이미지에 가까웠습니다.
케이지는 4분 33초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칭하며, "작곡가의 느낌과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주관성, 의도, 취향에서 벗어나려 했고, 전통적 작품 개념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초연 당시 많은 관객이 불만을 토로하며 객석을 떠났지만, 이 작품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음악계에 폭발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객석의 기침 소리, 공기의 울림, 관객 자신의 호흡까지 음악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음악을 작곡가의 통제된 결과물이 아닌 환경과 우연성이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경험으로 전환시켰습니다.
20세기 음악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음악 개념 자체의 확장이었습니다. 케이지의 4분 33초는 형태적으로는 기존 음악과 단절되어 보이지만, 음악과 환경, 작곡가와 청중, 소리와 침묵 간의 관계성을 재정의하며 새로운 연속성을 만들어냈습니다. 불편하지만 사고의 틀을 깨는 이러한 시도들은 음악의 본질이 형태가 아닌 관계 속에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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