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곡가인데요, 사실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연주자들은 그의 음악적 특징을 살리며 연주하는게 익숙치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베르만 연주법으로 적용하여 연습하는 방법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저 또한 이 방법으로 더욱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테크닉적으로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 연주법을 참고해보세요.
베르만 연주법
보리스 베르만은 예일대 교수이자 피아니스트로, 레브 오보린의 제자입니다. 오보린은 프로코피에프와 동시대에 살며 그의 곡을 직접 초연한 인물입니다. 즉, 베르만은 작곡가와 직접 연결된 연주 계보를 이어받은 셈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단순히 이론서 하나 읽는 게 아니라 작곡가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해석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르만이 제시한 핵심 이론 중 하나가 'In & Out 주법'입니다. 여기서 In 주법이란 건반을 누른 뒤에도 팔의 무게를 풀지 않고, 그 무게를 다음 프레이즈로 흘려보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손가락이 건반 뿌리에서 자라나듯 천천히 음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Out 주법은 건반을 치자마자 빠르게 떼어 무게를 즉시 없애는 방식으로, 가볍고 탄력 있는 소리를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1악장
1악장에서 서정적인 선율 라인과 갑작스러운 스포르찬도(sforzando, 특정 음을 갑자기 강하게 치라는 표기)가 교차하는 부분을 연습하면서, 두 주법을 의식적으로 구분해 쓰기 시작했더니 음색의 대비가 훨씬 또렷해졌습니다.
베르만의 연주법 철학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교적 행위와 음악적 목적은 항상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보통 기교 연습과 음악 표현을 따로따로 쌓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곡은 그렇게 접근하면 어느 순간 벽이 생깁니다.
2악장
2악장은 이 소나타 전체에서 가장 테크닉적으로 험난한 악장입니다. 제가 직접 연습해봤는데, 양손 교차와 연속적인 화음 진행, 두 옥타브를 뛰어넘는 넓은 도약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이 부분을 근성으로만 밀어붙이면 어깨와 팔목에 무리가 옵니다.
이때 베르만이 제시한 절용 원리(Economy Principle)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절용 원리란 연주에 필요한 신체 동작을 최소한으로 줄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원칙입니다. 손가락이 건반에서 필요 이상으로 높이 들리지 않도록 하고, 이동 거리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빠른 패시지에서의 실수율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개념이 확대 원리(Extension Principle)입니다. 확대 원리란 손가락, 손목, 팔, 어깨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동작을 만들어낸다는 원칙입니다. 큰 화음을 치거나 넓은 도약을 할 때 손가락만 쓰면 소리가 얇아지는데, 어깨와 팔의 무게를 함께 실으면 안정감 있고 풍부한 사운드가 나옵니다. 1악장 193마디의 불협화음 화음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베르만의 이론을 적용할 때 참고할 핵심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리를 만드는 다섯 요소(무게, 신체 질량, 타건 스피드, 깊이 지각, 손가락 모양)를 악장별 성격에 맞게 조합한다
- In 주법은 레가토가 요구되는 서정적 프레이즈에, Out 주법은 스타카티시모(staccatissimo, 원래 음가의 약 1/4 길이로 매우 짧게 끊어 치는 기호)나 탄력 있는 패시지에 적용한다
- 절용 원리로 동작을 줄이고, 확대 원리로 신체 전체를 소리의 도구로 활용한다
- 아티큘레이션 기호를 분석해 작곡가의 감정선을 역추적한다
3악장
3악장은 g sharp minor, 안단테(Andante)로 전체 소나타에서 가장 내성적인 악장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느리고 조용한 악장으로 봤는데, 제 경험상 이 악장이 오히려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악장이었습니다. 피아니시모(pianissimo)를 긴 시간 동안 유지하면서도 프레이즈의 긴장감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르만은 이 악장의 왼손 화성에서 러시아 음악 특유의 종소리 같은 음향이 들린다고 설명합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비들로(Bydlo)를 떠올리면 이 분위기가 좀 더 쉽게 잡힙니다. 덤덤하면서도 어둡고 서정적인 색채, 이게 프로코피에프가 어린 시절 러시아에서 흡수한 음악적 언어입니다. 1912년 Kislovodsk 리조트에서 작곡된 이 곡은 그의 본능적인 음악 감각이 가장 날것으로 담긴 시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스티나토(ostinato, 특정 리듬이나 음형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기법)와 복조성(polytonality, 두 개 이상의 조성이 동시에 사용되는 기법)이 3악장과 4악장 전반에 걸쳐 등장합니다. 이 두 요소는 프로코피에프가 즐겨 쓰던 현대적 어법이며, 연주자 입장에서는 화성의 긴장감이 어디서 발생하고 어디서 해소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페달 처리와 다이나믹 설계가 제대로 됩니다.
4악장
4악장 비바체는 6/8박자로 타란텔라(tarantella,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유래한 빠른 춤곡으로 6/8 또는 3/8박자가 특징) 풍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8분음표 3개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2박자 계통으로 인식하는 것이 리듬의 안정성 유지에 결정적입니다. 제가 처음엔 6개의 8분음표를 하나하나 세며 쳤더니 음악이 흐느적거렸습니다. 그룹핑 개념을 적용하고 나서야 곡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법과 음악 교육에 관한 학술 자료들에서도 기교와 음악성의 통합이 고수준 연주자의 핵심 역량으로 반복 강조됩니다.
결국 이 곡을 제대로 치려면 악보의 기호 하나하나를 작곡가의 감정 언어로 읽어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베르만의 이론은 그 감정 언어를 신체 동작으로 번역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줍니다. 기교 문제로 막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막힘의 원인이 기술 부족인지 아니면 음악적 방향 설정이 없는 것인지부터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방향이 잡히면 손도 따라옵니다.
참고: - Boris Berman, Notes from the Pianist's Bench, 2008
- Boris Berman, Prokofiev's Piano Sonatas, Yale University Press, 2008
- F.E.Kirby, Music for Piano: A Short History, 한국어판 『피아노 음악사』, 도서출판 다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