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3번은 저의 학부생 시절 실기곡이었는데요, 베토벤 소나타를 준비하던 손으로 넘어간 이 곡의 첫 페이지에서 셋잇단음표가 갑자기 마구 쏟아지는데, 머리가 먼저 "이건 뭔가 다르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고전적인 틀 안에 전혀 고전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는 작품.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배경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3번 Op.28은 "From Old Notebook", 즉 '옛 노트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1907년에 처음 구상된 스케치를 10년이 지난 1917년에 꺼내 다듬어 완성한 곡입니다. 작곡가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발전부와 재현부는 일부 손을 댔지만,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10년 전 그대로라고 했습니다.
이 곡이 탄생한 1917년이라는 시점도 흥미롭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이고, 프로코피에프는 이듬해인 19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직접 초연을 올렸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에 10년 된 메모를 꺼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는 사실이, 저는 어딘가 이 곡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격렬하면서도 문득 고요해지는 그 감정선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1944년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에 다섯 가지 주요 요소가 있다고 직접 정리한 바 있습니다. 고전적(Classicism), 혁신적(Innovation), 동력적(Motor), 서정적(Lyric), 괴이한(Grotesque) 요소입니다. 소나타 3번은 이 다섯 가지가 단악장 안에 압축적으로 담긴 작품이라는 점에서, 프로코피에프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삼기에 적합한 곡입니다.
분석
제가 직접 이 곡을 분석해보니, 겉으로는 완전히 고전 소나타 형식입니다. 소나타-알레그로(Sonata-Allegro) 형식이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로 구성되는 18세기 고전주의의 대표적 악곡 구조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시대부터 확립된 형식입니다. 이 곡도 그 틀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완전 정격 종지도 나오고, 알베르티 베이스도 나오고, 2마디·4마디 단위의 프레이즈 구조도 고전적입니다. 여기서 알베르티 베이스(Alberti bass)란 왼손이 화음의 구성음을 낮은 음-높은 음-중간 음 순서로 분산시켜 반복하는 반주 패턴으로, 18세기 건반 음악의 전형적인 반주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얹히는 화성 언어가 심상치 않습니다. 2도와 7도 음정을 활용한 불협화음이 곳곳에 박혀 있는데, 여기서 불협화음(Dissonance)이란 동시에 울렸을 때 긴장감과 충돌감을 만들어내는 음정 관계를 가리킵니다. 고전 화성에서는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지만, 프로코피에프는 이걸 해결 없이 내버려 두거나 오히려 음악의 추진력으로 사용합니다. 처음 이 부분을 치면서 "이게 맞나?" 싶었는데, 악보를 거듭 확인해보니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써있었습니다.
소나타 3번의 형식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시부 (mm. 1~93): 제1주제(a단조, Allegro tempestoso), 제1·2 경과구, 제2주제(C장조, Moderato), 코데타
- 발전부 (mm. 94~153): 제1·2주제 변형, 대위법적 발전, 서정적 클라이맥스
- 재현부 (mm. 154~204): a단조 귀환, 주제 변형 재현
- 코다 (mm. 205~234): Poco piu mosso, 타악기적 반복과 극적 종결
제2주제는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Moderato로 템포가 바뀌면서 러시아 민요풍의 서정적 선율이 나타납니다. 4성부로 된 대위법적 구조인데, 여기서 대위법(Counterpoint)이란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 동시에 진행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기법으로, 바로크 시대 바흐가 완성의 경지에 올려놓은 작곡 기법입니다. 프로코피에프가 고전주의와 바로크적 요소를 동시에 끌어오면서도 거기에 자신만의 화성 색채를 덧칠했다는 게, 이 주제부에서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연습 방법
이 곡을 연주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틀린 부분은 1~2마디, 그러니까 시작부터였습니다. ff로 셋잇단음표 화음을 두드려야 하는데, 처음엔 너무 팔 힘으로 때려서 소리가 뭉개졌습니다. 이 부분은 타악기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먼저 "피아노니까 예쁘게"를 실행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손목을 고정하고 손가락 끝의 무게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연습 방식을 바꿨습니다.
토카타(Toccata) 요소도 이 곡의 핵심 과제입니다. 토카타란 건반 악기에서 빠르고 기계적인 음형을 연속적으로 구사하는 기법 또는 형식으로, 프로코피에프는 슈만의 토카타 Op.7에서 이 동력적 에너지를 흡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소나타 3번 전체에 이 토카타적 리듬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서, 셋잇단음표의 규칙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기계적으로 들리지 않게 숨결을 조절하는 것이 연주의 핵심 과제입니다.
발전부에서 Moderato로 전환되는 122마디 이후 구간은, 제 경험상 이 곡에서 가장 까다로운 감정 전환입니다. 직전까지 ff로 몰아붙이다가 갑자기 dolcissimo로 가야 하는데, 단순히 소리만 줄이는 게 아니라 음색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soft pedal과 damper pedal을 함께 쓰면서 손끝을 건반에 완전히 밀착시켜야 그 부드러운 음색이 나옵니다. 이걸 몰랐을 때는 그냥 "작게 치기"를 했는데, 소리의 질감이 전혀 달랐습니다.
코다 구간(205마디~)에서 나오는 그로테스크(Grotesque) 요소도 연주자가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로테스크란 익살스럽고 기이한 분위기, 풍자와 조롱의 감각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 부분에서는 pp와 ff의 극단적 대비, 예고 없는 악센트 이동, 스타카토의 날카로운 리듬감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감각을 살리지 못하면 코다가 그냥 빠른 마무리로만 들립니다. 연주자 스스로 "지금 조금 비틀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치는 것과 아닌 것이, 듣는 사람에게 분명히 다르게 전달됩니다.
학부생 시절 이 곡을 공부했던 경험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결국 반주학과 리사이틀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타악기적인 주법과 그로테스크한 선율이 다른 곡에서도 나오는데, 곡 마다 이러한 음악어법을 발견할 때마다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피아노 음악 연구에서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는 20세기 피아니즘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특히 타악기적 피아노 기법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학문적으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음악학회). 또한 프로코피에프의 자서전적 기술과 음악 어법에 관한 분석은 국제적인 음악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음악정보센터 IMSLP).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3번은 7~8분짜리 단악장 곡이지만, 그 안에 담긴 층위가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고전 형식의 뼈대를 이해하고, 그 위에 얹힌 20세기 화성 언어와 리듬 문법을 따로 또 같이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프로코피에프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이 곡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가 얼마나 다층적인지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악보만 보는 것과 실제로 손끝으로 소리를 만들어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니까요.
참고: - 20세기 작곡가 연구회, 「20세기 작곡가 연구 II」, 음악세계, 2001
- Machlis, Joseph, 『Introduction to Contemporary Music』, 이찬해 역, 수문당, 1988